최희준(티모테오, 崔喜準, 1936-2018)은 정치인 김대중(토마스 모어)의 신당 ‘새정치국민회의’의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그는 ‘우리의 문화를 발전시키는데 각 분야에서 전문적으로 활동한 문화예술인들의 역량은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정치판에 뛰어들었다. 그리하여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갑선거구에 출마했다. 상대는 신한국당 심재철이었다. 심재철은 MBC 보도국 기자와 한나라당 부대변인을 한 사람으로 지역 주민들에게 인지도가 꽤 높았다. 투표자 조사에서 심재철이 1위였다. 그런데 실제로 개표해보니 당선자는 새정치국민회의의 최희준이었다. 그리하여 최희준은 15대 국회의원이 되었다. 가수 출신 정치인 1호가 된 것이다.
최희준은 국회에서 문화체육공보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국회에서 통합방송법을 놓고 갑론을박의 치열한 논의가 있었다. 구시대의 산물인 영화 등에서의 사전 검열 제도가 아직도 남아있었다. 헌법재판소에서 위헌이라고 판결을 내렸으나 관행은 여전했다. 최희준은 이를 정리했다. 또한 사형제 폐지 법안 발의에 앞장섰다. 가톨릭교회에서는 사형제를 강력히 반대했다. 하느님께서 주신 생명을 존중하는 가톨릭 신앙에 입각해 입법을 추진한 것이었다. 최희준은 국회의원을 마치고 문예진흥원 상임감사로 일했고, 한국대중음악연구소 이사장을 맡아 일하기도 했다. 그리고 대한민국 연예예술상 대상을 수상해 화관문화훈장도 받았다.
아내와 함께 감사 기도 열심히
최희준은 사귀던 여인과 결혼하고 싶었다. 그녀는 깊은 신앙심을 가진 가톨릭 신자였다. 그녀의 마음에 드는 방법은 같은 신앙을 갖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녀는 사귀면서도 최희준에게 성당에 다니라고 말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최희준의 예비신자 입교식 때도 그녀가 축하해준 말은 “믿기로 결정했으니 앞으로 열심히 하세요”였다. 예비신자 교리반에 등록해서 그녀의 말대로 열심히 교리 공부를 했다. 세례는 주님 성탄 대축일 전에 받았다. 그리고 세례를 받은 이듬해에 그녀와 결혼했다.
지방 공연이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매주 아내와 함께 주일 미사에 참여했다. 아침마다 아내와 함께 “오늘 하루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하느님 안에서 잘 지낼 수 있도록 이끌어주십시오”라고 기도드렸고, 저녁마다 “오늘 하루도 평화롭게 보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했다. 아내는 성당에 열심히 봉사하는 신자였다. 오랫동안 장례 미사 전례 봉사를 했다. 장례 미사는 미사 시간이 새벽이거나 이른 아침 또는 예고 없이 봉헌되기에 적지 않은 희생이 필요했다. 아내는 이를 기쁘게 받아들이며 봉사했다. 세례를 받은 후에 아내와 함께 8박 9일의 이냐시오 피정도 했다. 그때 연예인 가톨릭 신자로서의 사명감을 깊이 느꼈다. 최희준은 식사할 때나 공연하기 전이나 공연하고 나서나 십자성호를 반드시 그었다. 특히 많은 걱정이 밀려들 때는 여지없이 십자성호를 그었다.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맡겨드리기 위해서였다. 최희준은 하느님께서 가수라는 탈렌트를 주시어 가수 생활하는 것을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 노래를 불렀다. 그는 노래를 목소리로 부르지 않고 ‘가슴’으로 불렀다.
천주교문화예술교우회 회장
최희준은 천주교문화예술교우회 회장을 오랫동안 맡아 열성적으로 활동했다. 연예인은 직업상 본당에 소속되어 신앙생활을 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매월 별도로 신자 연예인들과 함께 명동대성당에서 문화예술인 미사를 봉헌했다. 최희준이 이를 주도했다. 영화배우 김지미(체칠리아)와 탤런트 이낙훈(프란치스코)도 교우회 회장을 맡아 봉사했다. 또한 전국의 성당을 찾아다니며 노래로 봉사했다. 문화적 혜택을 받기 어려운 지역에서 공연을 요청해오면 피아니스트를 동반해 어디든지 달려갔다. 특히 어린이를 돕는 공연은 최우선으로 두고 찾아갔다. 그것이 자신에게 맡겨진 소명으로 생각하고는 기쁘게 노래했다. 그리고 주교좌 명동대성당 축성 110주년 기념 ‘본당의 날’을 맞아 ‘한마당 축제’가 열렸을 때도 유명 연예인들과 함께 참석해 기쁨을 나눴다.
또한 경기도 안양에 있는 인덕원본당 사목회장(현 총회장)을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았을 때 자신은 사목회장 그릇이 못 된다고 펄쩍 뛰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 소임도 하느님을 위해 봉사하는 것임을 깨닫고 그대로 순명했다. 그리고 수원교구 가정사목연구소가 ‘아버지 대회’를 열고 요셉 성인의 신앙을 본받아 성가정을 이룰 것을 다짐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그곳에도 참석해 ‘하숙생’, ‘맨발의 청춘’ 등을 노래하며 아버지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었다. 이렇듯 최희준은 연예 활동을 하며 신앙생활도 열심히 했다. 최희준은 늘 “노래를 통해 봉사할 수 있다는 것은 내게 주어진 가장 큰 은총 중의 하나”라고 했다. 그는 김수환 추기경이 “매스컴에 기도하는 장면이 나가는 것만큼 큰 선교활동이 어디 있겠는가”라는 말을 늘 가슴 속에 기억하고 살았다. 김 추기경은 배드민턴 선수 방수현의 경기를 TV로 보다가 우승하는 순간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성호를 긋는 모습을 보고 기억했다가 그렇게 말한 것이었다.
최희준은 가톨릭신문에 글 한 편을 기고해 자신의 신앙을 밝혔다. “나는 스스로 ‘항상 기쁘게’ 살기 위해 노력합니다. 삶의 태도에서 이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기쁘면 감사를 드리고 또 감사를 드리면 기쁘고, 늘 감사하며 남에게 기대하지 않을 때 더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요즘에는 정말 매일 빠짐없이 ‘감사하다’는 기도가 입에서 떠나질 않습니다. 하느님께 감사와 기쁨을 봉헌하는 삶은 물론 쉽지만은 않은 일입니다. 하지만 계속 노력하다 보면 어느 순간 실천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만날 수 있습니다.”
충실한 신앙인, 하느님 곁으로
최희준은 앓고 있던 병이 악화가 되어 여든둘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염수정 추기경은 그리스도 신앙인으로 충실히 살았던 원로가수 최희준의 선종에 애도를 표하고 고인의 영원한 안식을 기원했다.
염 추기경은 애도 메시지에서 “최희준 티모테오님은 바쁜 일정 중에서도 천주교 문화예술인들과 함께 노인복지시설, 장애인 복지시설, 교정시설에서 위문공연을 통해 하느님을 전하고 본당 총회장으로도 열심히 봉사한 충실한 그리스도 신앙인이었다”고 했다.
최희준이 그 특유의 음색으로 하느님을 애타게 부르던 성가가 생각난다. “주님 주님 주님 앞에 서면/ 왜 이렇게 눈물이 흘러내리는가요?/ 주님 주님 주님 생각하면은/ 가슴 속에 행복이 깊이 스며들어요/ 길을 밝혀주시는 전능하신 아버지/ 언제나 어디서나 함께 하시는 아버지”(‘주님’에서)
참고자료 : ▲가톨릭평화신문(2018.8.27) ‘염수정 추기경 “故 최희준 씨, 충실한 그리스도 신앙인이었다” 애도’ ▲가톨릭평화신문(2008.5.25) 명동대성당 축성 110주년 기념 ‘본당의 날’ 행사 다채 ▲가톨릭평화신문(2008.5.2) 수원교구 가정사목연구소 ‘제2회 아버지 대회’ 개최 ▲가톨릭평화신문(2007.3.19) ‘제1회 아버지 대회’ ▲가톨릭신문(2018.9.2) ‘원로가수 최희준 씨’ ▲가톨릭신문(2007.1.14./1.7/1.1/2006.12.17./12.10/12.3/11.26/11.6) ‘원로가수 최희준’ ▲임진모. 「오랜 시간 멋진 유행가3·6·5」 스코어. 2022 ▲정두수 「노래 따라 삼천리」 미래를 소유한 사람들. 2013 ▲이영미 「한국대중가요사」 민속원. 2006 ▲신성일 「청춘은 맨발이다」. 문학세계사.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