깔깔수녀님. 수도자와는 왠지 어울리지 않는 의성어지만, ‘깔깔’ 웃고 있는 수녀님은 어딘가에 있을 법한, 그래서 쉽게 연상되는 모습이기도 하다.
한번 보면 귀엽고 유쾌한 이미지에 절로 미소를 짓게 되는 캐릭터 ‘깔깔수녀님’이 오랜만에 서울 명동 갤러리 1898을 방문했다. 전시는 5일 끝나지만, 이 캐릭터를 만든 작가가 궁금해서 갤러리를 찾았다.
“오래전 cpbc 가톨릭평화방송과 성경 테마의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려고 새롭게 만든 캐릭터예요. 어려운 이야기를 재밌고 유쾌하게 들려줄 수 있는 친근한 수녀님 이미지로 다듬었죠. 우여곡절 끝에 애니메이션은 방영되지 않고 깔깔수녀님만 살아남았어요.(웃음)”
홍익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중앙대대학원에서 영상예술학을 전공한 정민영(요한) 작가는 캐릭터 및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다. 깔깔수녀님은 2016년 초대전으로 처음 선을 보였고, 이후 다수의 전시와 아트페어, 뮤지컬 ‘시스터 액트’와의 콜라보 등으로 신자 여부를 떠나 꾸준히 대중과 호흡했다. 하루에도 수많은 캐릭터가 만들어졌다 사그라지는 요즘 같은 세상에 장수한 셈이다.
2023~2025년 인천교구 주보에 실린 깔깔수녀님은 2년 전부터 성지 순례기를 올린 정 작가의 SNS에도 등장하고 있다. 국내는 물론 희년을 맞아 작년에는 로마 4대 대성전도 방문했다. 애니메이션이든 캐릭터든 어찌 보면 상업시장의 최전선에 있는 그가 수익과는 거의 연결되지 않는 작업에 몰두할 수 있는 원동력이 궁금했다.
“모태 신앙이고, 부모님 영향이 큰 것 같아요. 아버지께서 6·25전쟁 때 다치셨는데, 병원에서 수녀님의 도움을 많이 받으셨대요. 그래도 신앙을 받아들일 마음은 없었는데, 어느 순간 수녀님과 같이 기도하고 계시더래요. 제게 언젠가부터 가톨릭 콘텐츠 관련 일이 이어지는데, 과제나 숙명 같다고 할까요. 가진 재능으로 조금이나마 도울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 생각해요.”
극구 신앙을 외면하던 그의 아버지는 추후 대전교구 죽림리공소(충남 홍성)를 재건하는 데 앞장섰다. 보이지 않는 이끌림에 아내와 함께 성지를 순례 중인 그는 자신의 탈렌트를 결집해 순교자들을 알리는 애니메이션 작업에 들어갔다.
“성지에 가면 그냥 좋아요, 숙연해지고요. 고향 집이 내포, 홍성 쪽인데, 어릴 때는 그 지역에 그렇게 많은 순교자가 계신 줄 몰랐어요. 그래서 순교자분들을 알리고 기억하게끔 애니메이션 작업을 조금씩 진행하고 있어요. 누구나 쉽게, 편하게 볼 수 있게요.”
러닝 타임은 대략 10분,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WYD)가 열리는 내년 무명 순교자부터 시리즈로 공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처음 깔깔수녀님을 실물로 제작할 때, 의도하지 않았는데 업계 분들이 독실한 신자라서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어요. ‘혼자 하는 게 아니구나, 기적이다’라는 생각을 했고, 언젠가부터는 깔깔수녀님이 저를 인도하는 것 같아요. 물론 예수님도 동행하고 계시고요. 신앙심이 대단한 것도 아니고 바쁠 때면 주일 미사도 빠지지만, 아버지의 어떤 울림이 있어요. ‘내가 했으니까 너도 해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