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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 모든 시, 나의 스승
촌스럽고 투박하지만 시는 유일한 위안
투시력도 없는 주제에 앞만 꿈꾸며 살았다. 사물의 너머를 관통하지 못하고 불안과 망설임에 나를 내맡긴 꼴이다. 가끔 누군가 뒤통수를 잡고 흔들 때면 두통에도 시달려야 했다. 첫 생리통의 날카로움보다 새벽이 남긴 숙취의 묵직함과 닮은, 왼 손바닥을 힘껏 벌려 관자놀이에 지문을 누르면, 남은 손은 뭘 해야 할지 몰라 허둥댄다. 열 손가락에 맞춰 디자인 된 자판을 외팔로 다루기란 쉽지 않다. 결국 통증에 굴복하기로 한다.
당선 통지를 받던 날, 사무실 일로 정신이 반쯤 나가있었다. 불현듯 갑자기 두통이 밀려왔다. 사 분의 사 박자 메트로놈을 닮은 일정한 리듬의 통증 속에서 이 기쁨을 누구와 함께 나눠야 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잠깐 시를 떠나 있었기 때문일까.
나의 습작기도 늘 이렇게 두통으로 시작되었다. 처음부터 스승이 따로 없어서 이 세상 모든 시가 나의 스승이었다. 내 생에 있어 `시`를 읽는다는 것은 가르침 그 자체를 의미한다. 시가 벗어놓은 묵은 속옷이라도 훔쳐 입을 때면 그 어떤 찐득함이 나를 전율케 했다. 감당하기기 쉽지 않은, 그래서인지, 나의 글은 촌스럽고 투박하다.
금방 불똥이라도 튈 것 같은 전선들이 하늘을 까맣게 메운 골목길 풍경이 좋다. 어쩌면, 매끈한 출퇴근 길에 줄 맞춰 서서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 사는 내게, 시는 유일한 위안일지 모른다. 자위의 소산물이 이렇게 사고를 칠 때면 난 더욱 부끄러워진다. 졸작을 품어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그저 감사할 뿐이다. 머리를 부여잡은 손을 놓기가 점점 힘들어진다. 두통이 반가울 때가 다 있다.
못난 딸자식을 마냥 사랑해주시는 부모님, 또 가슴으로 이어진 이들과 이 부끄러움을 나누고 싶다.
▨약력=▲1982년 부산 출생 ▲2008년 중앙대학교 영화학과 졸업 ▲2002년 진주문예 당선 ▲현재 회사원 ▲세례명 : 로사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