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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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BC 창설 산파역 김수환 추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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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BC(아시아주교회의연합)와 한국교회 특히 김수환 추기경은 각별한 인연이 있다. 한국교회는 FABC 태동에 주도적 역할을 했고 특히 김 추기경은 FABC 창설의 산파였다.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또 한국에서 개최되는 이번 총회에 대한 김수환 추기경은 어떤 관심과 기대를 갖고 있을까. 7일 서울 혜화동 추기경 집무실에서 김 추기경한테 이와 관련한 이야기를 들었다.
 

 김 추기경은 먼저 FABC 제8차 정기총회의 한국 개최에 대해 이런 국제회의가 한국에서 열리는 것 자체가 하느님께 감사드릴 일 이라며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아시아 각국 주교들과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까지 포함하면 200명이 넘습니다. 이런 대규모 국제회의가 한국에서 열린다는 것은 한국교회가 그만큼 성장했다는 것을 의미하고 또 대다수가 외국 교회 대표들이어서 우리로서는 그만큼 배울 기회가 많을 것입니다.

 김 추기경은 특히 이번 정기총회 주제가 인간 삶의 가장 근원적 두가지 가치인 생명과 가정임을 주목하면서 생명과 가정이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는 상황에서 이를 주제로 한 회의가 한국에서 열린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주신 은총의 기회 라고 말했다.

 김 추기경은 FABC와 어떤 관계가 있을까. 사연은 이렇다. 1970년 11월 교황 바오로 6세가 필리핀 마닐라를 사목방문했다. 이 기회에 당시 마닐라 대주교 산토스 추기경은 아시아 각국 주교들을 마닐라로 초청해 처음으로 아시아 주교들이 한자리에 모여 회합을 갖게 됐다. 사목적 현안에 대해 서로 의견을 나누고 정보를 교환하며 친교를 도모하고 협력함으로써 아시아 전체 복음화에도 기여하자는 취지였다.
  그러나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일회성으로 그쳐서는 안되며 상설기구화가 필요할 것 같아서 아시아 주교회의의 상설기구화를 한국 주교단 안으로 준비해 마닐라에서 회의 안건으로 제출했습니다. 찬성하는 분도 있었고 반대하는 분도 있었지만 며칠이 지나도록 회의에서는 다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김 추기경은 그래서 뜻을 같이 하는 몇몇 주교와 신학자들과 함께 저녁마다 자리를 마련해 어떻게 하면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지를 논의했다. 어느날 교황청 인류복음화성 차관 피네돌리 대주교가 찾아왔다.

  피네돌리 대주교는 내가 낸 안건을 보았다면서 왜 이 안건을 토의하지 않느냐고 하기에 로마에서는 어떻게 보느냐고 물었더니 반대 의견일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물었더니 이런 게 있어야 한다. 나는 절대적으로 지지한다 고 말하는 것이었어요.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백만원군을 얻은 심정이었습니다.

 용기를 얻은 김 추기경은 뜻을 같이하는 홍콩의 서 주교와 상의해 영어에 능통한 서 주교가 이 안건을 정식 발의하도록 했다. 일부 반대가 있었지만 뜻밖에도 대다수가 찬성했다. 그리하여 교황 바오로 6세가 마닐라에 온 후에 정식으로 제의해서 통과시켰고 김 추기경을 위원장으로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 규약 초안을 작성하기 위한 실행위원회가 구성돼 이듬해 3월 홍콩에서 후속모임을 가졌다.
  당시 주 대만 교황대사인 캐시드 대주교(나중에 추기경이 돼 교황청 일치평의회 의장을 지냄)가 마닐라에서 주교들이 결의한 사항에 대한 로마의 의견을 가지고 왔습니다. 내용을 읽어보았더니 대부분이 부정적이었어요. 로마의 입장대로라면 우리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지요. 로마가 그렇게까지 부정적으로 나올 줄은 몰랐습니다.

 김 추기경은 고심 끝에 캐시드 대주교와 진지하게 상의했다. 주교들이 아시아 주교회의 기구를 만들기 위해 모인 것은 언론이 다 알고 있는데 우리가 아무런 결실을 내지 못한다면 엄청난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된다. 수많은 아시아 주교들의 실망감이 엄청날 것이다. 우리가 회의체를 만드는 것은 로마와 독자적으로 행동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로마의 품안에서 형제적 일치 속에 일하려는 것이다. 우리의 이런 뜻을 당신이 로마에 전달해 줄 수 없겠느냐.

  캐시디 대주교는 내 말을 듣고는 자신이 책임지겠다고 말하고 돌아갔습니다. 로마가 부정적 반응을 보인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었겠지만 당시 중남미에서는 CELAM(라틴 아메리카 주교회의)가 있었고 아프리카에서도 비슷한 회의체(SECAM)가 있었습니다. 로마에서는 CELAM과 상대하기도 벅찼는데 아시아에서까지 비슷한 기구가 만들어지는 것이 거북했던 같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FABC가 CELAM과 달리 법적 구속력을 갖는 것이 아니라 각국이 원할 때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협의기구로 또 결정사항도 의무적으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참고하도록 하는 느슨한 형태의 기구로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규약안을 만들어 로마에 보내고 몇 차례 수정을 거쳐서 마침내 1972년 11월 교황 바오로 6세의 승인을 받았다. 이에 앞서 김 추기경은 1971년 로마에서 열린 세계주교대의원회의에 참석하는 길에 교황을 알현했고 그 자리에서 규약이 조만간 승인될 것이라는 암시를 받았다.

 FABC 설립 배경과 관련한 일화를 이같이 소개한 김 추기경은 지난 30여년 동안 FABC는 아시아교회에는 물론 한국교회에도 크게 기여해 왔다고 말했다.

  FABC를 통해서 아시아의 각국 교회들은 서로 협력하고 친교를 나누는 가운데 아시아 교회가 하나라는 인식을 점점 더 깊게 하게 됐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언어 문제로 인해 이런 변화를 깊이 인식하지 못하고 있지만 FABC를 체험한 이들은 주교들은 물론 성직자와 수도자들까지도 FABC가 참으로 아시아교회를 위해 참으로 좋은 기구라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김 추기경은 특히 한국교회가 FABC로부터 받은 큰 도움으로 소공동체 모임을 꼽았다. 소공동체 운동은1990년 인도네시아 반둥에서 열린 FABC 제5차 회의에서 나온 결실입니다. 당시 우리교회는 소공동체가 필요하다는 인식은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몰랐습니다. 그러나 반둥회의에서 소공동체를 아시아 교회가 나가야 할 길로 천명한 후 남아프리카 룸코 프로그램의 복음나누기를 받아들여 서울대교구 주교들과 사제들이 먼저 체험을 하고 교구 전 차원으로 확산시켰고 이제는 한국교회 전체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소공동체 운동은 교회가 FABC를 통해 얻은 큰 수확입니다.

 김 추기경은 이밖에도 정의·평화 인간개발 가난한 이와 함께 하는 교회 청소년에 대한 관심 타종교와의 대화 토착화 같은 문제들도 FABC를 통해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다.
 FABC가 출범한 후 지금까지 세차례 정도 정기총회에 참석했다는 김 추기경은 특히 생명 문화를 지향하는 아시아 가정 을 주제로 한 이번 제8차 정기총회에 각별한 관심과 기대를 표시했다.

  생명과 가정은 가장 근원적 가치들입니다. 생명이 없으면 우리 자신이 존재할 수 없고 가정이 없으면 생명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중요한 두 가치가 오늘날 큰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생명경시풍조 죽음의 문화라고 할 수 있는 반생명적 현상이 매일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생명의 존엄함을 더욱 힘있고 깊이있게 느끼고 사회에 생명의 소중함을 힘차게 전해 생명이 존중되는 문화로 바꾸어야 합니다.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번 정기총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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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04-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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