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 노동자 페루 여성 미리안씨 외동딸 신디씨 한국에서 백혈병 걸려
▲ 엄마 미리안(왼쪽 두번재)씨와 신디가 이주사목위원회 수녀들과 상담하고 있다.
비명과 낮음 신음이 오갔다. 골수를 뽑기 위해 엎드려 있는 딸(신디 22)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으으으으윽…. 신디는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다 못해 보랏빛이 됐다. 엄마는 더이상 지켜볼 수가 없었다. 눈물을 쏟으며 병원 성당으로 달려갔다. “예수님 성모님 우리 딸 좀 살려주세요.”
엄마 미리안(40)씨는 2002년 페루에서 한국으로 왔다. 남편과 이혼하고 생계를 책임져야 했기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9살이었던 딸 신디는 친정엄마에게 맡겼다. 한국에서 일한 돈을 페루로 보내면 친정엄마와 신디가 먹고 사는 데에는 문제가 없을 듯싶었다. 신디가 크면 대학에라도 보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굳게 마음먹고 온 한국이었다.
2010년. 친정엄마가 돌아가셨다. 신디 혼자 페루에 남겨둘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한국에서 신디와 살 마땅한 집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휴지 공장에 취직한 미리안씨는 공장 기숙사에서 지냈다. 경기도 파주에 있는 공장은 2층짜리 컨테이너 건물로 1층은 공장 2층은 기숙사다. 동남아에서 온 노동자들이 주로 살고 있다. 허허벌판에 공장만 몇 개 있는 이곳엔 버스도 1시간에 한두 대만 지나다닌다. ‘신디를 이런 곳으로 불러야 할까?’ 이번에도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승무원을 꿈꾸던 페루 여고생 신디는 2012년 한국에 왔다. 낯선 나라 낯선 말 낯선 사람들…. 신디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덜덜덜덜 돌아가는 기계 소리만 들으며 엄마 기숙사 방에서 하루 종일 지냈다. 신디를 돌봐온 서울대교구 이주사목위원회 김영심 수녀는 “신디나 엄마나 그런 곳에 살면서 우울증에 걸리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라고 말했다.
한국에 온 지 1년쯤 지났을까. 신디는 자주 머리가 아팠다. 아픈 정도가 아니라 걷지도 못하고 앞도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감기에 걸리면 열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다 응급실에 실려갔다. 검사는 길어졌다. 병명은 만성골수성백혈병이었다. 엄마는 그만 주저앉고 말았다. 하지만 신디는 “괜찮다”며 엄마를 일으켜 세웠다. 워낙 밝고 긍정적인 성격이었다. 신디는 현재 3개월마다 병원에서 검사를 받고 약을 먹으며 지내고 있다. 약은 평생 먹어야 한다.
미리안씨는 병원비와 약값을 더 벌어야 했다. 공장이 쉬는 주말엔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엄마를 돕기 위해 신디 역시 식당 아르바이트를 해봤지만 백혈병에 걸린 몸으론 무리였다. 아르바이트를 하다 쓰러져 입원한 뒤부터는 엄두를 못 내고 있다. 신디는 “빨리 한국말을 배워 한국에서 통역 일을 하고 싶다”면서 “엄마도 쉬어야 하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
▨후견인 / 김평안 신부(서울대교구 이주사목위 부위원장)
미리안씨와 신디는 열악한 환경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백혈병에 걸린 신디는 한국어 공부를 열심히 하며 통역사의 꿈을 키우고 있습니다. 그런 신디와 신디 뒷바라지 하기 위해 쉴 틈 없이 일하는 미리안씨를 위해 따뜻한 도움을 부탁드립니다.” 성금계좌(예금주 : 평화방송) 국민 004-25-0021-108 농협 001-01-306122 우리 454-000383-13-102
※신디씨에게 도움 주실 독자는 6일부터 12일까지 송금해 주셔야 합니다. 이전에 소개된 이웃에게 도움을 주실 분은 ‘사랑이 피어나는 곳에’ 담당자(02-2270-2512)에게 문의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