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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구 총대리 손희송 주교가 고 김병도 몬시뇰의 장례 미사 고별식에서 분향을 하고 있다. |
서울대교구 원로 사목자로 올해 사제수품 60주년을 맞은 김병도 몬시뇰이 3월 24일 노환으로 선종했다. 향년 86세.
김 몬시뇰의 장례 미사는 3월 26일 주교좌 명동대성당에서 교구장 염수정 추기경과 사제단 공동집전으로 거행됐다. 미사에 참여한 신자들과 성직ㆍ수도자들은 한마음으로 고인의 영원한 안식을 기원했다. 고인은 서울대교구 용인공원묘원 내 성직자 묘역에 안장됐다.
염 추기경은 미사 강론에서 “김 몬시뇰은 성가정의 가장인 요셉 성인처럼 자신의 계획보다 하느님의 계획과 뜻이 이뤄지도록 온 정성을 다해 사셨다”며 “덕망 높고 겸손해 자신이 하는 일을 크게 드러내거나 자랑하는 일이 없는 분이었다”고 회고했다. 이어 “교구의 심장부에서 일하면서 시대의 징표를 읽으며, 특히 빈민 사목과 노인 사목에 힘쓰며 사제 성화의 모범을 보이셨다”고 말했다.
김 몬시뇰의 추천으로 신학교에 입학한 이기우 신부는 고별사에서 “몬시뇰님은 교구의 중책을 맡으셨던 화려한 모습보다는 프란치스코 성인을 본받아 무의탁 어르신들과 함께 질박하게 사셨던 모습을 보여줬다”고 추모하며, 대방동본당 주임 사제로 사목할 당시 성전 신축에는 온갖 정성을 기울이면서도 낡은 사제관에는 손도 대지 않았던 일화들을 소개했다. 그는 “‘자라는 아이들이 아버지의 등을 보고 큰다’는 말이 있듯, 사제의 길을 따라간 후배 신부들이 이제는 신부님을 보내드리려 한다”며 천상 안식을 기원했다.
1961년 3월 사제품을 받아 올해 사제수품 60주년을 맞은 김 몬시뇰은 1955년 성신고등학교(소신학교)와 1961년 가톨릭대를 졸업했다. 사제품을 받고 6년간 해군 군종신부로 사목했다. 이어 미국 듀케인대에서 교육행정학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1971년부터 15년간 당시 서울대교구장이었던 김수환 추기경을 보필하며 교구 비서실장 겸 홍보담당 사제를 지냈다. 이어 가톨릭출판사 사장, 대방동본당 주임, 교구 사무처장을 비롯해 명동·가락동·구의동본당 주임 및 제8지구장 등으로 사목했다. 1987년 사무처장이자 명동본당 주임사제로 사목했던 시절, 6·10 민주항쟁의 보루가 된 명동성당을 지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2001년 몬시뇰에 임명된 후 의정부교구가 신설되기 전까지 경기도 지역 교구장 대리를 지낸 후, 교육담당 교구장 대리ㆍ학교법인 가톨릭학원 상임이사를 맡았다. 2010년 은퇴해 원로 사목자로 지냈다.
고인은 수호성인인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의 모범을 따라 청빈의 삶과 가난과 겸손의 영성을 몸소 실천했다. 정진석 추기경과 서품 동기인 김 몬시뇰은 생전 무의탁 노인 공동체를 설립하는 등 노인사목에 특별한 열정을 쏟았다. 그가 설립한 무의탁 노인공동체만 ‘글라라의 집’(1991년)과 ‘프란치스코의 집’(1997년) 등 4곳으로, 물적 예물이 들어오면 모두 무의탁 어르신들을 위해 내놨다.
그가 번역한 책으로는 「그 사람이 바로 당신이다」와 「어떻게 기도할 것인가」가 있으며, 사제품 40주년을 기념해 회고록 「흘러가는 세월과 함께」(2001)를 펴낸 바 있다. 이 회고록에는 김 몬시뇰이 70년대 군부정권 시대에 민주화를 위해 싸웠던 김수환 추기경, 지학순 주교 등 교회 역사를 서술했다.
이지혜 기자 bonappetit@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