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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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목일기] 사장님이 되어 나타난 그 소년

김경숙 수녀 (마리아 수녀회, 마리아구호소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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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가는 중 영등포역에서였다.

  수녀님 수녀님…

 누군가가 큰 소리로 나를 불렀다. 돌아보니 키 큰 젊은 신사였다.

  혁이를 모르시겠어요? 저 진혁이에요.

  어머 세상에 너무 반갑다.

  못 찾아봬서 정말 죄송합니다.

 혁이는 그동안 대학공부하고 영어배우고 회사를 경영하느라 바빴다고 한다. 건축장비를 만들어 수출하는 무역회사를 운영 중인데 출장 다녀오는 외국인 직원을 마중나왔으나 시간이 바뀌어 기다리는 중이란다.

  저희 회사 사무실을 보셔야지요. 여기서 가까워요.

 혁이는 나를 강제로 자기 차에 태워 어디론가 달렸다. 자동차에 탑승한 채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수십층이나 되는 빌딩으로 올라가는데 현기증이 나서 혼났다.

 혁이는 그날 옛날 이야기를 하고 싶어던 게다.

  공부하고 싶어 신문을 팔았어요. 하지만 공부는커녕 굶기가 일쑤였지요. 그래서 소년의 집 에 도움을 청했던 거예요. 하느님의 은총으로 신부님 수녀님 계시는 소년의 집에서 공부했어요. 그 시절이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 있어요.

 정말이었다. 진혁이는 입소하자마자 우리 반으로 배치됐는데 조금 내성적인 것 말고는 잘 적응했다. 혁이는 중학교 2학년 때 가출을 한 적이 있다. 부산역과 그 당시 아이들이 많던 형제원 등으로 사방 찾아다녔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밤새 잠을 못자고 차 소리만 들려도 혁이가 단속에 걸려 실려오는 줄 알고 뛰쳐 나가보곤했다.

 혁이는 이튿날 초췌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화가 치밀었으나 돌아온 게 고마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가지 약속을 받아냈다. 이제 어떤 일이 있어도 가출만은 하지 않겠다고. 혁이는 약속을 잘 지켜 줬다.

  영도다리 밑에 앉아 넘실거리는 바닷물을 바라보며 인생을 생각했어요. 마음이 편해지더라고요. 그때 가출해서 소년의 집을 떠났더라면…. 생각만 해도 아찔합니다.

 혁이는 사무실에 앉아 일하는 직원들 모두는 허리와 다리가 아프다고 야단인데 자신은 신부님과 함께 마라톤을 뛰며 단련된 몸이라 끄떡없다고 자랑했다.

  부지런히 돈벌어 소년의 집 동생들을 위해 뭔가 하고 싶어요. 또 수녀님들 호강도 시켜 드려야지요.

 혁이는 마다하는 내게 노잣돈을 넣어 주었다. 그러나 그는 알고 있다. 그 돈도 가난한 아이들 환자들에게 모두 돌아갈 것이란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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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06-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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