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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목일기] 사랑이라는 말로

김훈일 신부(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대북지원소위 간사, 청주교구 초중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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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세기가 넘는 분단의 세월이 지나가며 남북의 말 쓰임새가 달라졌다고 걱정하는 이들이 많다. 사실 북녘 말들 중에 문화적 차이로 오해를 겪는 말들이 있다.
 북녘 형제들이 자주 쓰는 말 중에 "일 없습네다"는 말이 있다. 무언가 도움을 받았거나 호의를 베풀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때, 북녘 주민에게 말을 걸면 꼭 이 대답을 듣게 되는데 왜 그런지 모르게 쌀쌀맞고 얄미워 보인다.
 그러나 이 말은 예의바른 거절 표현으로 남쪽에서는 "괜찮습니다"는 말과 비슷한 의미의 말이다. 반대로 북쪽 식당에 가면 "아가씨"라는 호칭 때문에 우리도 실수를 한다.
 우리야 `아가씨`라는 말이 시집갈 나이에 이른 젊은 여자를 예쁘게 부르는 말이지만, 북쪽에서는 이 호칭이 구시대 봉건사상에 물든 퇴폐적 여성들을 부를 때 사용하는 말이다. 그러니 북쪽에서 젊은 여자를 그렇게 부르는 것은 결례다. 그래서 북쪽 식당에서는 "접대원"이라는 호칭을 써야 하는데, 이 말은 또 남쪽에서 퇴폐적 용어다 보니 쉽게 말이 나오지를 않는다.
 이런 언어적 차이가 한 겨레인 우리 생각과 행동의 방식도 이질화시키지 않을까 걱정하기도 하지만, 사실 분단이라는 상황으로 우리 민족 고유의 팔도 사투리와 지방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에 빚어지는 현상일 뿐이이다.
 얼마 전에 함께 방북했던 수녀님들 중 한 분이 고향이 제주도였다. 북쪽 일행과 사투리 이야기가 나와서 수녀님의 제주도 사투리를 들어보기로 했다. "혼자옵서예……", 그리고 이어지는 제주도 방언에 남쪽이건 북쪽이건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들 뭐라고 하는지 감도 잡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사실 북녘 말은 민족적 색채를 강조하다 보니 작위적 표현이 많고, 반면에 우리 남쪽 말은 외래어의 남용이 심하다. 그러나 북쪽에서 사용하는 말 때문에 의사소통이 어려운 것은 별로 없다.
 오히려 생각과 사고 방식의 차이에서 오는 어려움이 더 크다. 그러기에 우리를 갈라놓은 것은 미움이고, 그것이 서로의 말도 다르게 들리게 한다.
 구약의 바벨탑 사건도 그렇지 않았을까!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서로 사랑하라"는 말이 역사와 문화, 인종, 지역을 넘어서서 모든 민족을 하느님의 백성으로 만들었듯이, 우리 민족도 사랑이라는 말로 서로가 서로를 깊이 용서하고 대화를 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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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08-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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