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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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목일기] ''신부님! 반성문 써 오세요''

정혁 신부(살레시오회, 돈보스코자립생활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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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일이다. 집으로 돌아가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신부님! 빨리 파출소로 오셔야 겠어요. 현진이가 절도죄로 파출소에 와 있어요."
 이런 일은 현진이에게 처음이 아니다. 벌써 세 번째다.
 서둘러 파출소로 가 담당경찰을 만나 선처를 부탁했다. 하지만 경찰관은 현진이의 죄가 무거워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중학교 3학년인 현진이는 당시 가출한 상태였다. 현진이는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10여 집에 들어가 절도를 했고 결국 집주인 신고로 잡혔다. 문제는 주인들이 용서보다 처벌을 원한다는 것이다. 집주인들을 찾아다니며 변상을 약속하고 선처를 부탁했다.
 현진이는 초등학교 때 큰 시련을 겪었다. 친구들과 장난을 치다가 재래식 화장실에서 친구를 화장실 아래로 밀어 떨어뜨리는 실수를 하고 말았다. 불행하게도 그 친구는 화장실 아래에서 나오지 못하고 죽고 말았다. 현진이는 어린 나이에 감당할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 오랫동안 힘들어 했고 더욱이 부모님의 결별로 형과 함께 우리집에서 생활하게 됐다.
 경찰 조사를 받은 현진이는 서울남부검찰청으로 넘겨졌다. 남부검찰청은 친숙하다. 벌써 세 번째니까. 처음 검찰청에 오게 된 것도 현진이 때문이다.
 그때 현진이의 선처를 부탁하려 현진이 보호자로 방문했다. 검사실에는 사람들이 수사관들에게 조사를 받고 있었고 결코 편안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조금 긴장된 상태에서 검사를 기다렸다. 그런데 주변을 살펴보니 사람들이 종이 위에 뭔가를 열심히 쓰고 있었다. 가서 보니 반성문 같은 것이었다.
 `설마 신부에게 반성문까지 쓰게 하랴`하며 담당검사를 만났다. 이런 저런 질문을 하던 검사는 "신부님! 아이를 잘 못 키운 잘못으로 반성문 쓰셔야겠네요"하는 것이었다. 검사실에서 나와 반성문을 쓰기 위해 생각해보니 무엇을 반성해야 하는지 막막했다. `아이를 열심히 키운 일 밖에 없는데….`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도 반성할 내용이 생각나지 않았다. 한 번도 반성문을 써보지 않았기에 어떻게 써야 하는지 몰랐다. `그래 무조건 잘못했고 앞으로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잘 키우겠다고 하면 되겠지`하고 반성문을 마무리 짓고 검사에게 반성문을 제출했다. 이것이 내 생애 첫 반성문이었다.
 두 번째도 현진이 때문에 같은 검사에게 반성문을 썼는데 두 번째까지는 어떻게든 쓸 수 있었다. 그런데 세 번째 반성문을 같은 검사에게 같은 내용으로 쓰려니 도저히 쓸 수 없었고, 미안하고 부끄러운 마음에 선처를 부탁할 수 없었다. "검사님 결단에 맞기겠습니다"는 말 밖에…. 결국 현진이는 가정법원으로 넘겨졌고 형을 받았다.
 "현진아 미안하다. 너에게 큰 힘이 되지 못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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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09-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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