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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하느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다"(루카 6, 20).
1988년 9월, 사병 제대를 그야말로 무사히 마치고, 성소국장 신부님께 제대 신고(?)를 하고, 신부님의 소개로 찾아간 곳이 빈민사목위원회였다. 그렇게 빈민사목과의 인연은 시작됐고, 빈민사목을 하시는 신부님과 함께 금호동 전세방에서 살았다.
연탄불이 꺼지지 않게 잘 살피고, 가끔 밥도 하면서, 신부님과 함께 만났던 사람들이 천주교도시빈민회 회원들이었다. 거의 날마다 와서 신부님과 밤새 이야기했던 모습들이 기억난다.
`세상에 이렇게 사는 사람들도 있구나!` 가난한 지역에 들어와서 최소한의 생활비로 살아가면서 아기방, 공부방, 야학, 노동 등을 통해 빈민운동을 하는 사람들, 그러나 늘 웃음 짓는 얼굴로 지역사람들을 만나는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과 가까워지고 그들이 하는 모임에 같이 참여하면서 그들과 함께 계시는 하느님을 느낄 수 있었다. 내 생애에 잊지 못할, 그리고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시간이었다.
그렇게 3개월을 보내고 복학하여 빈민사목에 관심 있는 동지(?)들을 모아 모임을 만든 뒤 신부님과 또 천주교도시빈민회원들과의 인연을 이어갔다. 그 후 사제품을 받고 군종사목을 거쳐 정식으로 빈민사목에 발을 들여놓은 것이 1999년이었다. 벌써 10년 세월이 흘렀다.
그 세월 동안 늘 내 머리를 맴돌았던 성경구절이 있다. 바로 위의 루카 복음 6장 20절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어떻게 행복할 수 있을까? 하느님 나라를 차지하기 때문이라면 어떻게 물질문명의 이 세상에서 하느님 나라의 삶을 살 수 있을까? 물질적 측면에서만 가난을 이야기할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빼놓고 가난을 이야기할 수도 없다.
가난하면 떠오르는 성 프란치스코는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께 가까이 다가가는 가장 확실한 길이 가난의 길이라고 했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은 삼양동, 33㎡가 채 안되는 공간에서 7명이 사는 가족, 음침하고 습한 지하 단칸방에서 혼자 사시는 할아버지, 한부모 가정, 그들은 내 삶을 부끄럽게 만든다. 가난하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늘 고민하게 한다.
이제 `이것이다`라고 정확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조금은 알 것 같다. 왜 가난한 사람들이 행복한지를. 부족하고 없는 만큼 하느님께서는 채워주신다. 돈으로는 결코 살 수 없는 그 무엇을. 그리고 그 무엇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를. 난 비록 가난하진 않지만 만일 내가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 있었다면, 지금보다 하느님과 더 가까울 수는 없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