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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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목일기] 가장 작은 이들에게 해준 것

임용환 신부(서울 삼양동선교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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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마태 25, 40).
 어릴 적에 아버지께서는 책을 많이 사다 주셨다. 최초의 기억 속 동화는 한국 전래 동화 중 호랑이와 곶감에 대한 이야기다. 호랑이가 온다고 해도 울음을 그치지 않은 아이에게 곶감을 주자 울음을 그치는 것을 보고 호랑이가 나보다 더 무서운 놈이 있구나 하고 도망갔다는 이야기.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무엇을 가장 무서워할까? 혹시 정말 무서워해야 할 것은 무서워하지 않고, 무서워하지 말아야 할 것을 무서워하는 것은 아닐까?
 해마다 이맘때면 극장에서, TV에서 공포물이 등장한다. 역시 한국 사람에게는 한국식 공포영화가 제격(?)이다. 그리고 그것은 꼭 죽음과 연관돼 있다. 죽어서도 편안히 잠 못 드는 영혼은 언제나 공포 대상이다. 지금 내 자신이 죽음을 맞는다면 과연 편안히 잠들 수 있을까? 어떤 한이 남아 있다면 무엇일까?
 며칠 전에도 세상을 떠나신 분의 장례미사가 있었고, 복음은 언제나 같이 위의 성경구절, 최후의 심판 이야기이다. 그런데 가장 작은 이에게 해준 것이 바로 예수님께 해 준 것이라니! 예수님은 가장 작은 이와 자신을 동일시 하셨다.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분명한 말씀이다. 다른 것 다 필요 없다.
 가장 작은 이에게 베풀면, 이는 곧 예수님께 베푼 것이고, 그렇게 살면 죽어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곳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해석도 설명도 필요 없이 분명하면서도 단순명료하다. 아니 오히려 너무 쉽고 분명해서 당혹스러울 정도다. `신앙에 대한 지식이 얼마나 많은가`도 아니고 `기도를 얼마나 많이 했는가`도, `성당에 얼마나 열심히 다녔는가`도 아니다. `얼마나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을 보살폈는가`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가 가장 무서워하면서 경계해야 할 것은 `얼마나 많은 사람을 도와주었는가` 하는 것일 텐데 많은 사람이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그것 보다는 돈이나 물질적인 어떤 것을 잃거나 갖지 못하는 것을 더 무서워하는 것 같다.
 죽음을 앞두고 가장 생각나는 것은 `자신이 무슨 업적을 얼마나 이루었는가`가 아니라 `살아오면서 얼마나 사랑을 하면서 살았는가` 라고 한다.
 살아가면서 일보다는 사람이 중요한 것이라고 늘 되뇌이면서도 지내다보면 사람보다도 일이나 성과, 업적을 먼저 생각하고 기준으로 삼고 있는 나 자신을 보게 된다. 특히 작은 이들을 상대할 때 더 그런 것 같다. 작은 이들 안에서 예수님을 발견한다면 신앙은 더 많이 갖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이 베푸는 것이라는 것을 알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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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09-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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