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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봐서는 이게 도대체 무슨 황당한 일인가? 하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 사연을 이야기하자면 이렇다.
요즘 성탄을 앞두고 판공성사 준비를 하면서 본당 각 구역을 방문하고 있다. 특히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쉬고 있거나 새로 전입온 분들을 중심으로 방문해 기도해 드리면서 신앙생활을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더욱이 시골 본당이기에 신부가 가정방문을 한다고 공지가 나가면 그때부터 신자들은 안절부절못한다. 집을 깨끗이 청소하고, 옷매무시를 가다듬고, 마치 예수님을 맞이하려는 사람들처럼 정성스럽게 준비한다. 그런 가정을 방문하면서 가정을 위한 기도를 바쳐 드리면, 신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신부와 봉사자들을 위해 간단한(?) 다과를 내놓는다. 없는 살림에 내놓은 그들의 정성에 감동하지만, 이것이 해프닝의 시작일 줄이야.
한 집 한 집 가정방문을 할 때마다 그들은 "신부님, 커피 한 잔하고 가세요. 저희 집은 신부님께 드릴 것이 이것밖에 없어서 정말 죄송해요"하며 커피를 건넨다. 그렇게 해서 마신 커피가 어느새 50잔이 돼 버렸다. `아~ 오늘 밤 잠은 다 잤다.`
여기에서도 커피, 저기에서도 커피… 어느 봉사자가 "신부님, 오늘 신자들에게 제대로 물 먹었네요!" 하자 그 자리에 함께했던 신자들 모두 웃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정말 신자들에게 제대로 물 먹었다. 봉사자들 역시 물 먹기는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마음이 기쁘고 따뜻하며 행복하다. 차 한 잔을 서로 나누면서 교우들 가정 형편에 대해 사제는 더 정확히 알고 도와드릴 방법을 찾을 수 있게 됐고, 신자들 처치에서는 신부 방문으로 인해 더 힘을 얻고 신앙에로의 의지를 더 깊이 할 수 있는 시간이 된 것 같다.
나는 이렇게 순수하고 착한 신자들 덕분에 커피뿐만 아니라 그들이 얼마나 교회를 사랑하고 사제를 사랑하는지 알게 됐다. 가정방문을 하면서 앞으로 또 얼마나 많이 물을 먹을 것 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렇게 착한 신자들이 주는 물이라면 나는 얼마든지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물 한 잔에, 커피 한 잔에 신자들과 사제가 친목이 더 돈독해질 수 있다면 나는 여러 잔 물을 마셔도 배부르지 않을 것 같다.
본당 가정방문을 하면서 가정을 위한 기도를 바쳐 드린 대가로 얻어 마시는 한 잔의 커피, 이 정도면 매일 가정방문을 해도 좋을 듯싶다. 구역의 각 가정에서 외쳐대는 "신부님! 차 한 잔하고 가세요"라는 이 정감 있고 구수한 외침 속에 오늘도 나는 행복한 하루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