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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호 신부(수원교구 가남본당 주임)
보좌 1년 차 때 일이다.
주일 저녁미사를 마치고 성당을 나서는데 웬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그 가족들이 찾아와 "그동안의 냉담을 풀고 다시 성당에 나왔습니다. 그래서 고해성사를 청합니다. 제 가족이 다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고해성사를 주십시오"하고 청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이 가족이 얼마나 오래 냉담했는지 물어봤다. 그랬더니 평균 25년이었다. 제일 오래 냉담하신 분은 할아버지와 할머니로 그 기간이 장장 50년이었다.
나는 속으로 `아이고, 이제 나는 죽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총 30명의 대가족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를 찾아오신 이 가족의 청을 뿌리칠 수 없어서 성당으로 다시 올라가 성사를 주기 시작했다.
먼저 다른 가족부터 성사를 드리고 마지막으로 할아버지께 성사를 드렸다. 그런데 이 할아버지께서는 당신께서 세례를 받으신 이후부터 냉담을 풀기 전까지의 모든 죄를 총고백하시는 것이었다. 그동안 얼마나 아픔을 안고 사셨을까 하는 생각에 나도 마음이 아파 하소연을 끝까지 들어 드렸다.
이런 할아버지께 무슨 훈계가 필요하겠는가? 당신이 살아오신 그 모든 날을 진심으로 뉘우치며 하느님께 용서를 구하는 할아버지 영혼이 다시 맑은 영혼으로 거듭 태어나신 것 같아 너무 감사하고 기쁠 따름이었다.
고해실에서 나온 할아버지와 나, 우리 두 사람은 아무도 없는 빈 성당 맨 뒷자리에 앉아 서로 끌어안고 울었다. 할아버지께서는 당신 얘기를 끝까지 들어줘서 고맙다고, 나는 할아버지가 고해성사를 통해 다시 한번 사제의 직무에 대해 일깨워 주심에 감사해 눈물을 흘렸다.
한 가족의 영혼이 이렇게 해서 다시 주님을 찾게 된 이 기쁜 날, 시계를 보니 새벽 5시였다. 새벽미사는 5시 30분인데….
간단하게 세수만 하고 성당에 내려오니 그 가족이 모두 미사에 참례하고 계신 것이 아닌가! 자그마치 30명이나. 영성체를 하는 순간 그 가족의 모습을 보았다. 다시 찾은 그들의 순수한 신앙의 열성을.
기쁜 마음으로 집에 돌아가는 그 가족을 보면서 `주님, 제게 이런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는 기도가 저절로 나왔다.
주일 저녁부터 시작한 고해성사는 다음 날 새벽 5시까지 총 8시간이나 걸렸다. 내가 무슨 힘으로 그 긴 시간을 버텼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만약 지금 8시간 성사를 주라고 하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지도 모른다.
몸은 비록 장시간의 고해성사로 피곤했지만 마음 만은 그렇게 편안하고 기쁠 수가 없었다. 왜냐면 그 고해성사를 통해 사제로서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또 배웠기 때문이다.
"오늘 하루도 주님께서 허락해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사랑합니다.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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