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자 야코부스 데 보라지네(1228/1229~ 1298/1299) 대주교가 1260년 펴낸 「황금전설」은 중세 후기 가장 영향력 있는 책 중 하나로 꼽힌다. 부제 ‘성인들의 이야기’가 말해주듯 교부들과 그 이전의 자료부터 1260년대 선정된 성인들을 아우르는 이 책은 그들의 삶과 죽음, 기적에 대한 모음집이다.
성인들 생애에 대한 가장 대중적인 중세 모음집이라는 면에서 중세 후기를 이해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책이라 할 수 있다. 1500년 당시 성경의 발행 부수보다 이 책 복사본 수가 더 많았고, 현재까지 1000 개 이상 이본(異本)이 전해진다.
당시 성직자, 설교자들의 강론과 교리문답을 풍성하게 하기 위한 자료로 만들어졌지만, 곧 중세의 베스트셀러가 됐다. 발간되자마자 성직자들은 강론을 위해 읽었고 신자들은 신심 함양을 위해 이 책을 펼쳤다. 미술가들과 작가들은 자신들 작품에 참고하기 위해 책을 사용했다.
때문에 「황금전설」은 신화와 전설뿐만 아니라 중세의 민속학, 역사, 문학, 예술, 종교 등 각종 분야를 연구하는 수단이 됐다. 그러면서 종교사 외에 미술사에도 크게 기여했다.
역자 변우찬(요한 사도) 신부(서울 우면동본당 주임)는 번역을 놓지 않았던 이유에 대해 ‘중세 미술, 르네상스 시대 작품, 특히 성경 내용을 그린 그림과 성인화를 이해하는 데 있어 이 책만큼 좋은 자료가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제목만 보고 그림을 이해하는 겉핥기식 감상은 화가의 의도를 정확히 알 수 없다. 그 배경이나 등장인물, 소품들까지 왜 필요했는지 파악한다면 그 그림을 충실히 이해할 수 있고 성인의 삶도 잘 알 수 있다.”
한글 번역본이 이미 출판돼 있으나 탈자나 오역이 많고, 교회 용어나 전례, 역사, 신심을 이해하지 못한 그릇된 번역이 많은 점도 변 신부가 번역을 결심한 이유였다.
1108쪽에 이르는 방대한 책은 ‘화해의 시기와 순례에 시기에 속하는 축일’, ‘탈선의 시기 축일’, ‘화해의 시기 축일’, ‘순례의 시기 축일’ 등으로 나눠졌고, 신약성경의 주요 인물들, 교부들, 교회 학자들, 교황들, 수도승들, 초기 교회 은수자들, 첫 4세기 동안의 순교 성인들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책의 원래 제목은 ‘성인들의 전기’(Legenda sanctorum)였으나 인기를 끌면서 ‘황금의’(Aurea) 수식어가 붙었다. 독자들이 황금만큼 중요하다고 인정했다는 의미다.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