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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여성] 가톨릭교회의 여성 사제 논쟁Ⅰ

박정우 신부(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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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0년대 여성신학의 비판적 성찰은 결국 여성을 사제로 허용하지 않는 교회 전통에도 도전했다.

 이미 교황 요한 23세는 회칙  「지상의 평화」(1963년)에서 시대의 징표를 읽고 있었다. "여성들은 자신들의 존엄성을 날이 갈수록 더욱 분명하게 의식하고 있다. 그들은 단지 도구로서 취급받거나 무시당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고, 오히려 가정생활과 사회생활에서 한 인간으로서의 합당한 권리를 요구하게 될 것이다" (41항).  

 1962년 스위스 여성 변호사이며 진보적 여권단체인 `성 요안나 국제연대` 게르투르드 하인츨레만 회원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 개막 전날 여성사제 문제에 관한 청원서를 제출했다. 비슷한 시기에 독일의 저명한 신학자 칼 라너의 제자 반 데르 미어는 남성만의 사제직에 관해 의문을 제기하는 박사논문을 준비하고 있었고 이후 같은 문제를 다루는 논문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미국에서는 1963년 `성 요안나 국제연대` 미국 지부 회원들이 여성 사제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한편 미국 수녀회들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거치면서 현대 세계 흐름에 맞춰 큰 변화를 겪었다. 대부분 수도복을 폐지하고 인권과 정의를 위한 운동에 적극 뛰어들었으며, 여성사제 문제 등 교회 내외 여성문제에 관해 주도적 역할을 하게됐다.

 1972년 유엔이 1975년을 세계 여성의 해로 선포하면서 교회 여성 문제에 관한 논의는 증폭됐다. 미국 여자수도회장상연합회는 1974년 총회에서 모든 교회 직무는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열려 있으며, 여성은 교회 의사결정 기구에 적극 참여할 권리가 있다고 결의했다.

 그러던 중 미국 몇몇 성공회 주교들은 11명의 성공회 여성을 사제로 서품하기로 결정했다. 이를 계기로 진보적 가톨릭 여성단체들은 1975년 12월 디트로이트에서 전국 규모 회의를 열어 본격적으로 가톨릭교회 여성 사제 서품을 주제로 다뤘다.  

 당시 미국 주교회의 의장 조셉 버나딘 대주교 (후에 추기경이 됨)가 회의 개최 한달 전에 여성 사제서품을 반대한다는 성명을 냈지만 오히려 이 회의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무려 예상의 두배가 넘는 1200명(이들 중 1100명이 수녀였다) 여성이 참석했고, 500여명은 자리가 없어 돌아가야 했다.    

 이 회의를 계기로 다음해 1976년 1월 `여성 사제서품 회의(The Women`s Ordination Conference=WOC)`라는 공식 기구가 발족했다. WOC는 그 후 3년마다 전국 회의를 개최해 가톨릭교회 여성 사제 서품과 교회 구조적 변화를 촉구해왔다.

 1976년 10월에는 미국 가톨릭 주교회의가 가톨릭교회 다양한 문제들에 관한 목소리를 수렴하려고 2년여 준비를 거쳐 전국 회의를 개최했다. 여기서도 많은 이들이 여성 사제서품 문제를 중요 과제로 촉구했다.

 교황청 신앙교리성은 여성사제에 대한 논란이 증폭되자 1976년 10월15일자로 여성은 사제로 서품될 수 없다는 내용을 담은 선언 「여성 교역 사제직 불허」를 발표했다. 이 선언에 따르면, 여성이 사제로 서품될 수 없는 이유는 △교회 전통에서 한번도 여성을 사제로 만든 일이 없다는 것 △예수가 남성만을 열두사도로 삼았다는 것 △예수가 남성이기에 남성만이 예수를 합당하게 외적으로 대표(natural resemblance)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성사제서품을 주장하는 이들은 과연 어떤 반론을 제기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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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06-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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