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수도자·사제로서 살아가는 것에 후회가 없는지 묻는 사람들이 있다. 다시 태어나도 지금의 삶을 살아갈 것인지 묻는 그들이 생각하는 사제의 삶이란 어떤 모습일까. 던지고 싶은 질문도 생긴다. ‘당신은 지금 삶에 만족하는가, 아니면 후회하는가?’
구약의 예언자 중에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스스로 험난한 삶을 선택한 이가 있을까. 그들은 자신이 원하지 않은 길을 걸어갔고, 계획과는 완전히 다른 환경에 던져져 예언자의 삶을 마쳤다. 수도자로 사는 삶도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이 아닌, 원하지 않는 일을 얼마나 잘 수행할 수 있는가를 먼저 자문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복음 삼덕에 응답하며 사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사제가 돼 10년이 지났을 무렵, 면담 성사를 주면서 알게 된 노부부가 있었다. 발달장애인 외손자를 어릴 때부터 자식처럼 키우던 분들이셨다. 노인시설 사목을 염두에 두고 사회복지 공부를 틈틈이 하고 있는데, 어느 날 노부부가 먼 훗날 당신들이 세상을 떠나면 손자를 받아달라고 간절히 부탁하셔서 구두로 약속했다. 그런데 1년 만에 두 분이 갑자기 잇따라 돌아가시면서 준비되지 않은 십자가가 내 앞에 ‘쿵’하고 던져졌다. 고민할 겨를도 없이 그렇게 서울 미아동에서 그룹홈을 시작했다. 7년 월세살이 후 충북 영동에 땅을 기증받아 건물을 짓고 이사했다. 많은 분의 기도와 도움으로 11월 말 축복식을 하고 두 개의 그룹홈 둥지를 틀었다.
그룹홈을 하면서 가끔 듣는 말이 있다. ‘신부님이 왜 그걸 하세요? 도미니칸 영성에 맞는 일인가요?’ 그래서 성 도미니코가 행한 설교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가를 들여다보게 된다. 우리의 스승이신 그분은 800년 전 왜 사람들을 하느님 안으로 오도록 설득하려 했으며, 어떤 영혼을 구하고자 낯선 곳에서 설교하였는지를….
자선의 롤모델인 착한 사마리아인은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주저 없이 약한 자를 보살폈다. 선택하지 않은 지금의 상황도 훗날 내 정체성에 착한 해답이 됐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