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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진단] 공생명(신승환 스테파노,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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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생명과학이 밝혀낸 바로는 지구 상의 모든 생명체는 단 한 번의 기원을 통해 생겨났으며, 그에 따라 그 생명체를 이루는 메커니즘 역시 동일한 원리에 따라 기능한다. 물론 생명의 기원에 관한 이러한 사실을 하느님의 창조와 연결해 이해하는 것은 자연주의적 오류를 저지르는 일이기에 피해야 할 것이다. 다만 이런 사실을 생명철학적으로 해석함으로써 생명을 이해하고 존중할 원리를 성찰하는 작업은 별개의 사안이다.

이런 과학적 사실을 밝힌 것은 린 마굴리스였다. 공생명(共生命) 설로 불리는 이 이론에 의하면 지구 상의 모든 생명체는 단일한 생명체라기보다는 다양한 생명체가 서로 연합하고 함께 살아감으로써 더 복잡한 수준의 생명체를 이루고 있다. 우리 몸에는 세포 수보다 더 많은 미생물이 함께 살고 있으며, 이들이 없다면 우리 몸이 올바르게 기능하지 못한다. 면역 기능과 소화 기능은 물론, 장내 미생물의 경우는 우리의 감정과 지능 작업에까지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영향을 미친다.

이들 없이 우리는 생명체로서 존재할 수가 없다. 더욱이 공생명 현상은 단순히 유기체의 내부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생명 세계 전체에 적용되는 사실이기도 하다. 개별적인 생명은 물론, 생명이 이루는 생명계 전체도 “더불어-함께” 살아가는 전체로서의 생명 세계이다. 단순히 개별 생명체가 개체를 유지하기 위해 다른 생명을 필요로 하는 현상을 두고 이 세상을 투쟁과 경쟁의 관계로 보는 것은 너무도 편협한 시각이다. 그런 의미에서 진화를 강한 자가 살아남는 과정으로 설명하는 사회다윈주의는 명백히 잘못되었다.

다른 생명체 없이, 그들과 맺는 관계없이 어떤 생명도 생명으로 타당하게 살아갈 수가 없다. 그 관계는 결코 일면적이지 않다. 경쟁과 다툼은 우리 자신이 살아가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일어나는 일이지만, 그 모든 것은 생명체가 더불어 함께 살아가기 위한 과정의 일면일 뿐이다. 루이스 캐럴이 쓴 아동 우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이런 사실을 잘 보여주는 이야기가 있다. 동물들이 사는 마을에 폭우가 쏟아져 모두가 흠뻑 젖었다. 젖은 몸을 말리기 위해 달리기를 제안하고 더 잘 달리기 위해 상을 걸었다. 한참을 뜀박질한 뒤 몸이 마르자 달리기를 멈추었다. 그러자 누가 상을 받아야 하는지 설왕설래할 때 도도새가 말한다: “우리 몸이 말랐으니 우리가 모두 이긴 거야. 모두가 상을 받아야 해.”

사람이 살아가는 사회에서 경쟁과 다툼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그 모두는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과정에서 일어나며 궁극적으로 더 나은 삶을 향해가는 과정에서 생기는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사실을 교회는 공동선(common good)에 대한 가르침으로 체계화하고 있으며, 사회철학적 관점에서는 공공성에 대한 논의로 이어진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부족한 덕목이 공동선에 대한 이해이며, 그것이 생명경시 문화를 초래하는 근본 원인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다른 생명체의 생명성 없이 나의 생명이 존재하기란 불가능하다. 미시적 경쟁과 투쟁을 넘어 거시적으로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원리를 실천하고, 공동선 개념을 증진할 때 비로소 생명존중의 문화가 제대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하느님 나라를 체험하지 못하는 이 세상에서 하느님 나라가 이미 와 있음을 선언하고 증명하는 표징이 아닌가. 이를 향한 그리스도인의 과제는 분명 현대 세계에서 생명을 살리고 존중하는 공생명의 원리를 실천하는 가운데 이루어질 수 있다. 생명 문화로의 전환은 그때야 가능할 것이다.



신승환 스테파노,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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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4-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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