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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인천교구장 나길모 주교 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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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교구 초대 교구장을 지낸 나길모(굴리엘모·미국명 William J. McNaughton·사진) 주교가 2월 4일 오전 5시50분(미국시간 2월 3일 오후 6시50분) 미국 매사추세츠 주 머슈언에서 선종했다. 향년 93세.

메리놀외방전교회 소속인 고인의 빈소는 미국 현지에 마련됐고, 인천교구는 인천교구청 내 보니파시오 대강당에 분향소를 마련했다. 위령미사는 10일 오전 10시30분 인천 주교좌답동성당에서 인천교구장 정신철 주교 주례로 봉헌됐다.

미국에서의 장례미사는 11일 오전 10시 매사추세츠 주 머슈언 소재 착한 의견의 성모-성녀 데레사 성당(Our Lady of Good Counsel-St. Theresa’s Church)에서 거행됐다. 장지는 매사추세츠 주 로웰 세인트 패트릭 묘지.

나길모 주교는 1926년 12월 미국 매사추세츠 주 로렌스 시에서 태어나 1944년 메리놀외방전교회에 입회해 1953년 6월 사제품을 받았다. 이어 미국 예일대에서 1년간 한국어를 배운 후 1954년 한국에 입국했다.

나 주교는 당시 서울대교구 소속 감목대리구였던 청주교구 장호원본당 보좌, 북문로본당 보좌와 주임, 내덕동본당 주임, 청주교구 참사와 부감목 등을 거쳐 1961년 6월 인천대목구장에 임명되고 그해 8월 주교품을 받았다.

1962년 인천대목구가 인천교구로 승격되면서 초대 교구장을 맡았으며, 2002년 은퇴 시까지 40년간 교구장으로서 인천교구 발전에 큰 공헌을 했다.

나 주교의 착좌 당시 본당 9개, 신자 2만여 명에 불과했던 인천교구는 현재 본당 128개, 신자 51만7000명에 이르는 교구로 성장했다.

고인은 1962∼1965년 열린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 교부(敎父)로 참석했으며, 주교회의 총무 및 전례위원회·일치위원회·교리교육위원회 위원장 등을 지냈다.

2002년 4월 인천교구장직을 사임하고 은퇴한 뒤 미국으로 돌아가 생활하면서 보스턴대교구에서 교포(한국인)사목 활동을 하며 여생을 마무리했다.

한편 고인은 2011년 주교 수품 50주년 금경축을 맞아 한국을 다시 찾기도 했다.

위령미사 강론에서 정신철 주교는 서해 5도를 포함한 본당 사목방문에 열심이었던 나 주교의 모습을 추억하며 “외국인이 드물었던 시절, 나 주교님의 한국에서의 삶은 여러 모로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지만 나 주교님이 선포한 복음은 외국인 주교를 신앙의 아버지로 받아들이게 했다”고 말했다.


김현정 기자 sophiahj@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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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0-02-11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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