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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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살이 신앙살이] (493) 보좌 신부 흉내 내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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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당 전교 수녀님과 본당 큰 행사에서 묵묵히 봉사해주신 분들을 모시고, 깜짝 이벤트로 배 타고 섬에 들어가 드라이브하고, 조개구이랑 칼국수를 먹는 프로그램! 그러나 일행 중에 두 분이 신분증을 가지고 오지 않아 계획은 시작부터 취소가 되었습니다. 나는 속으로, ‘미리 말씀을 드릴 걸. 아… 깜짝 이벤트를 하다가, 다들 깜짝 놀랐네! 이런… 어떡하지….’

같이 간 일행분들은 처음에 약간 당황은 했지만, 미안해하는 내 마음을 아시는지, 서로 깔깔거리며 웃은 다음 ‘좋은 경험했네요!’ 하며 나를 위로해 주었습니다. 나는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다는 생각에 멘-붕이 왔는데, 다른 일행분들은 신분증이 없어 배를 못 타게 된 상황이 웃음의 소재가 되었습니다.

할 수 없이 근처 해수욕장 근처로 차를 몰고 갔습니다. 그리고 공용 주차장에 차를 세운 다음 방파제 쪽으로 걷는데, 눈이 부시게 푸르른 바다와 부서지는 포말, 그리고 멀리서 나는 갈매기들로 인해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함께 간 일행들은 연신 사진을 찍으며, ‘좋다, 좋다’는 말만 연발하였습니다. 나 또한 그분들과 웃으며 바다 냄새도 맡고, 사진의 모델 역할을 했더니, 마음 한구석에 뻥 ? 하니 뚫리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11시가 조금 지난 시각, 아직 한산해서 그런지 주변 식당들도 조용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무 식당에 들어가서 조개구이랑 칼국수를 시켰습니다. 그냥 좋은 분들과 있어서 그런지, 모든 것 하나하나가 맛있었고, 웃음과 함께 수다를 떨었습니다. 그렇게 우리 일행이 식사를 다 마칠 무렵, 그제서야 본격적인 점심 식사 시간이 되었는지 사람들이 계속해서 밀려 들어왔습니다.

우리 일행들은 포만감과 함께 행복한 표정으로 그 식당을 나오며, 한마디씩 했습니다. “식당에 일찍 와서 우리끼리 맛있게 점심을 먹으니까 이것도 좋네, 좋아.”

그런 다음, 천천히 모래사장을 걷는데, 일행 중 한 분이 해변을 걷는 갈매기를 보더니, “어머, 저 비둘기 좀 봐라. 날개도 하얗네!”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순간, 다들 빵 터져서 한바탕 자지러지게 웃었습니다. 그런데 그 옆에서, 다른 분 한 분이 진지하게 말씀하시길, “나는 오리인 줄 알았는데!”

농담인지, 진담인지는 모르지만, 그냥 다들 웃었습니다. 그러면서 해변을 거니는데, 해변 끝자락에 다시 길이 하나 나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유로운 마음에 어느 누구라고 할 것 없이, 그 길을 계속해서 따라 걸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예전에 행사를 하면서 힘들었던 일, 그리고 즐거웠던 일, 특히 다른 사람들은 모르지만 자기네들끼리만 실수하고, 틀린 것들을 이야기하면서 웃음보따리를 풀어 놓았습니다.

그렇게 해안선 길을 한참이나 걸었더니 오로지 바다만 바라볼 수 있는 작은 찻집이 나왔습니다. 우리는 그 찻집의 테라스에 앉아 차 한 잔씩 마시면서 2시간 동안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우리들 대화 곁에는 눈이 부시게 푸른 하늘과 푸른 바다, 그 위를 나르는 갈매기들. 그리고 철썩거리는 파도와 흰 포말들. 너무나도 행복한 순간이 펼쳐졌습니다.

몇 달 동안 본당에서 수고를 많이 해주신 분들을 위해 하루 소풍을 깜짝 이벤트처럼 해 드리고 싶었던 나! 한마디로 말해서, ‘보좌 신부 흉내 내기’를 시도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보좌 신부 흉내만 내다가, 정말이지 소풍 아닌 소풍을 다 망칠 뻔했습니다. 하지만 인간에게 더 좋은 것만을 주시는 하느님께서는 당신 안에서 진정, 봉사의 삶을 살고 있는 이들을 위해서 더 좋은 프로그램을 손수 짜 주셨습니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나 혼자 들떠서 보좌 신부 흉내 내기만 했으니…. 오늘도 ‘하느님 감사합니다’를 고백합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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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9-07-09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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