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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1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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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살이 신앙살이] (501) 청빈의 시작은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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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잘 아는 교구 신부님이 사목하시는 본당에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약속 시간 보다 조금 일찍 도착했더니, 그 신부님은 사제관 화장실에서 뭔가를 손빨래하고 계셨습니다.

“신부님, 저 왔어요.”

그러자 그 신부님은 화장실에서 나오시더니,

“어, 강 신부 왔어. 그래, 앉아. 냉장고에서 마실 것 하나 꺼내 먹고. 잠시만 기다려 줘.”

그런 다음 화장실에서 하시던 손빨래를 마저 하셨습니다. 그리고 빨래를 널고 오시더니,

“미안, 그래 점심은 먹었어?”

“예. 먹고 왔습니다. 그런데 뭘 빨고 계셔요?”

“응, 클러지 셔츠. 손빨래를 하라고 해서 빨았어.”

“식복사 자매님께서 해 주시지 않으셔요?”

“빨래를 해 주셔. 그런데 손빨래하는 옷은 내가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해서, 쉬는 날 내가 하는 거야. 식복사 자매님은 다른 빨래도 다 해 주시는데, 그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이잖아!”

“야, 우리 신부님, 열심히 사신다.”

“에이. 그런 말 마. 그냥 기본을 하는 거야. 사실, 이 클러지 셔츠는 지난달에, 전에 있던 본당에서 나에게 신세를 좀 지신 분께서, 삼베처럼 시원한 클러지 셔츠를 선물로 주셨어. 나에 대한 고마운 마음에 어려운 살림에도 정성스레 선물을 준비해 주셨더라. 그래서 나 또한 기쁜 마음으로 받았지. 그런데 옷을 받고 보니, 뭔가 붙어 있었어. 그래서 봤더니, 손빨래 전용 옷이라는 게 적혀 있었지. 순간, 마음에 드는 그 옷을 보면서 생각을 좀 했지. 이 옷은 갖게 되면…. 입을 때마다 드라이클리닝을 하면 돈이 들어가고, 손빨래를 하게 되면 입을 때마다 내가 좀 더 부지런해야 되고. 그래서 내가 좀 더 부지런하게 살면 되겠다 싶어서, 옷 선물을 기쁘게 받아서 이렇게 입고 다니는 거야.”

“오늘도 신부님께 뭔가 하나는 배우네요.”

“배우기는 뭘. 나도 살면서 많은 선물을 받았는데, 이제는 선물을 받을 때마다 생각을 하게 되더라. 우리 나이가 되면, 서서히 비우고 살아야 하거든.”

“선물을 받게 되면, 생각을 하신다! 혹시 신부님은 어떤 생각의 기준이 있나요?”

“에이, 뭐 특별한 거 없어. 사실, 누군가 크고 작은 선물을 내게 해 주시면, 맨 먼저는 선물을 하시는 분들에게 진심 어린 감사의 마음을 가지는 거지. 그것이 청빈의 시작이 아닐까 생각해. 사실 살면서 ‘청빈’이라는 글자에 매여, ‘이것은 청빈에 맞다’ ‘저것은 청빈에 맞지 않다’를 따지는 분들을 만날 때가 있어. 그런데 그렇게 살면 스스로가 좀 피곤하지 않을까 싶어! 중요한 것은 선물 앞에서 ‘청빈’의 잣대로 재기 전에, ‘우리 삶 자체가 주변 분들에게 귀한 대접을 받고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 좋겠어. 그러면서, 감사함을 간직하며, 선물을 주신 분들의 정성 어린 마음을 생각하며, 선물에 대한 대가인 냥, 우리가 보다 더 겸손하고, 성실하고, 충실한 사람으로 살아가면 되는 거잖아. 청빈의 삶에 감사의 마음을 가지며 살아갈 때, 그때 비로소, 나눔의 마음 또한 건강하게 생겨나는 것이라 생각해. 사실 감사의 마음도 없이 언제나 나눔의 삶을 맹목적으로 산다면, 결국은 스스로 엄격함의 잣대를 가지게 되는 것 같아. 정말이지, 감사의 마음이 바탕 되지 않는 원칙적인 나눔의 삶은 스스로를 의인이라 생각하게 만들고, 자신도 모르게 엄격함의 잣대를 키우게 되고, 그런 마음은 결국 타인을 판단하는 어리석음에 빠지게 되더라.”

진정한 청빈의 마음은 감사함에서 나온다는 그 신부님의 말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정말 필요한 말씀 같았습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9-09-03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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