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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쉬운 믿을교리 해설-아는 만큼 보인다] 42. 하느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셨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470~483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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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에 대한 책임은 나에게 있을까요, 유혹한 사람에게 있을까요? 아담의 죄는 자신을 유혹한 하와의 탓일까요, 아니면 본인의 탓이었을까요? 혹은 하와가 죄를 지은 것은 자신의 탓이었을까요, 뱀의 탓일까요? 죄는 다 본인의 탓입니다. 유혹은 항상 존재할 수밖에 없는데, 결국 결정권은 자신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 안에서는 ‘자아’와 ‘양심’이 서로 싸웁니다. 자아는 뱀과 같이 인간을 유혹하고 양심은 하느님의 율법대로 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사탄은 자아를 통해 우리를 유혹하고 하느님도 양심을 통해 우리를 유혹하십니다. 인간은 두 유혹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 선택에 대한 책임도 져야 합니다.

그런데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양심의 법대로 살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하였습니다. 하느님의 은총을 저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든 인간은 항상 자아의 유혹에 순종하는 본성으로 태어납니다. 자아의 유혹은 ‘생존본능’입니다. 자신의 생존을 유지하려면 다른 생명을 희생시켜야 합니다. 그래서 생존욕구는 그것을 따르는 즉시 가까운 생명들에게 피해를 주게 만듭니다. 양심적으로 이웃에게는 피해를 끼치지 말아야함을 알면서도 그것이 잘 되지 않습니다. 이런 인간의 모순성을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한탄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율법은 영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육적인 존재, 죄의 종으로 팔린 몸입니다. 나는 내가 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나는 내가 바라는 것을 하지 않고 오히려 내가 싫어하는 것을 합니다.”(로마 7,14-15)

예수님은 양심의 법이 자아의 법에 대항하여 이길 수 있는 법을 알려주시기 위해 세상에 오셨습니다. 성령으로 다시 양심의 법을 발동시켜 자아의 법을 이겨야 함을 몸소 삶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평화를 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싸움을 일으키러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당신 성령으로 양심의 법을 일으켜 마음의 분열을 일으키십니다.(루카 12,49-53 참조)

그런데 아폴리나리우스와 같은 이단들은 그리스도의 마음 안에서는 그런 식의 분열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하느님의 ‘말씀’이 영혼을 대치했기 때문입니다. 즉 양심의 법이 이성의 법을 대치했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서는 갈등이 일어날 수 없다는 주장입니다. 하느님의 법칙만이 예수 그리스도를 지배했기 때문에, 즉 유혹이 없어서 죄에 떨어질 수 없으셨다는 주장입니다.(471항 참조)

그러나 이는 크게 잘못된 생각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육체만이 아니라 지성과 의지가 결합된 온전한 인간의 영혼도 지니신 분이셨습니다.(470항 참조) 그러니까 예수님도 영혼 안에 인간 생존욕구의 법이 새겨진 채 태어나신 것입니다. 그 생존욕구가 바로 그리스도께도 ‘유혹’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유혹을 이기시기 위해 광야에서 40일간 단식하시며 성령의 힘으로 그 육체의 법과 싸워 이기셨습니다. 당신 안에 죄의 법이 넣어져있지 않았다면 싸움도 하실 필요가 없으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니 동산에서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 원하시면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루카 22,42)

당신 자아 안에 새겨진 인간의 법은 곧 당신의 뜻이었고, 당신 양심 안에 새겨진 법은 아버지의 뜻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을 위해 당신 뜻을 십자가에 못 박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구원자가 되신 이유는 당신께서 우리 모두와 똑같은 참 인간이 되시어 어떻게 육체의 법을 이기는지 그 모범을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죄에 떨어지지 않으신 이유는 유혹이 없어서가 아니라 단 한 번도 그 유혹과의 싸움에서 지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모든 유혹을 성령의 못으로 십자가에 못 박으실 줄 아셨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그리스도께서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길을 먼저 내어주셨기에 그 길로 우리도 하느님이 되어가는 과정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은 내 자신 안의 육체의 법과의 싸움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유혹이 없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공로도 없습니다. 예수님도 싸우셨습니다. 우리도 싸워야 예수님과 같아집니다.




전삼용 신부 (수원교구 영성관 관장·수원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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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9-10-22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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