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8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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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쉬운 믿을교리 해설-아는 만큼 보인다] 48. 하느님 나라의 선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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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소년 쟈니는 조부모님을 방문하고 새총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쟈니는 새총 쏘는 연습을 하다가 그만 실수로 할머니의 애완 오리를 죽입니다. 그는 두려운 마음이 들어 오리를 장작더미 속에 감추었습니다. 그러나 눈을 들어보니 여동생 샐리가 자기가 하고 있는 모든 행동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날부터 샐리는 쟈니를 자신의 노예로 삼습니다. 예를 들어 할머니가 “샐리야, 설거지 좀 도와줄래?”라고 하시면, 샐리는 “오늘은 쟈니가 부엌일을 도와 드릴 거예요. 그렇지 오빠?”라고 말합니다. 그리고는 쟈니에게 작은 목소리로 “오리를 기억하지?”라고 속삭입니다. 그러면 오빠는 어쩔 수 없이 설거지를 해야 했습니다.

며칠 뒤 동생에게 이런 노예생활 하는 것이 너무 힘든 나머지 쟈니는 이 모든 사실을 할머니에게 고백하기로 결심합니다. 애완 오리를 자기가 죽이고 장작더미 속에 숨겨두었다는 것을 말씀드렸을 때 할머니는 쟈니를 안아주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쟈니야, 할머니는 이미 다 알고 있었단다. 나는 그때 이미 너를 용서했단다. 다만 샐리가 너를 노예로 삼는 것을 네가 얼마나 견디는지 두고 보았을 뿐이야.”

죄를 지으면 누구나 ‘죄의 노예’가 됩니다.(요한 8,34 참조) 그런데 죄책감으로 괴로워하고 있을 때 이미 죄가 용서받았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면 참으로 기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책감으로 힘겨워하는 인간들에게 당신이 세상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죄를 다 없애실 것임을 믿게 하시기 위해 세상에 오셨습니다. 인간이 죄의 노예생활에서 벗어나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하게 하시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541항 참조)



물론 자신은 죄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죄가 없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면서 자신의 죄를 잊어버린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서로 심판하며 자신의 죄를 감추려 한 것과 같습니다. 죄책감은 하느님 앞에서 숨게 만들고 자기 합리화를 위해 자동적으로 이웃을 판단하게 합니다. 이웃을 심판하면 유일한 심판관이신 하느님과 동등해지려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진짜 죄가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의로운 이가 없다. 하나도 없다”(로마 3,10)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복음의 기쁜 소식을 받아들이려면 먼저 내가 죄인임을 인정하는 ‘회개’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셨습니다.(545항 참조)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는 사람들만이 죄의 용서를 통한 영원한 생명의 기쁨을 누립니다.(543항 참조)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죄가 사해졌다는 복음은 우리가 더 이상 우리 죄를 덮기 위해 이웃을 심판하는 자기합리화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덕분으로 우리가 죄를 용서받고 두려움 없이 주님 앞에 나설 수 있게 되는 것을 ‘의화’(義化)라고 합니다. 하느님 앞에서 빚이 없는 상태가 ‘의로움’이고 그 의로움 때문에 누리는 ‘기쁨과 평화’가 ‘하느님 나라’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일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로움과 평화와 기쁨입니다”(로마 14,17)라고 말합니다. 성령은 그리스도의 피와 같습니다. 그리스도의 피 흘림 덕분으로 우리가 의롭게 되어 그 죄의 속박에서부터 해방된 기쁨과 평화를 누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리서는 “하느님 나라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결정적으로 세워질 것입니다”(550항)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쟈니는 할머니의 용서를 믿고 자유로워졌습니다. 기쁘고 평화롭습니다. 그렇다고 할머니의 자비로움을 이용해 또 장난삼아 오리를 죽일 수 있을까요? 그럴 수 없습니다. 할머니가 용서하기 위해 참아낸 고통을 생각하며 다시는 할머니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리지 않을 결심을 할 것입니다. 진정으로 죄를 용서받은 사람도 그 은혜에 감사해서 더 이상 죄를 짓지 않게 됩니다. 죄를 용서받았음을 진정으로 믿지 못하는 사람들만이 계속 죄를 짓습니다.

죄의 지배를 받으면 사탄의 나라이고 주님의 지배를 받아 계명을 지키면 하느님 나라입니다.(550항 참조)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죄를 용서받았다는 사실을 믿고 죄를 감추기 위해 이웃을 심판할 필요가 없는 사람들만이 하느님의 나라가 됩니다. 그렇게 죄를 용서받아 하느님 뜻에만 순종하는 공동체가 ‘교회’입니다. 교회는 이 지상에서부터 시작되는 “하느님 나라의 싹”인 것입니다.(541항 참조)


전삼용 신부
(수원교구 영성관 관장·수원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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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9-12-03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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