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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 영성 이야기] (3) 하느님께서 우리를 짝지어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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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경기 양평 용문산에 가족들과 짧은 1박2일 여행을 다녀왔다. 아이들을 집에 내려주고 부부 모임에 가려면 빠듯한 시간이었는데 진출구를 깜빡 지나쳤고, 다시 길을 찾아가다 한 번 더 길을 놓쳐 무려 20㎞를 돌아와야 했을 때 한순간 차 안에 정적이 흘렀다.

“아니, 한두 번 다니던 길도 아닌데 거길 왜 지나치고 그래? 안 그래도 바쁜데 이렇게 30분이나 늦어지면 어떻게 해?”하고 다그쳤다면, 남편 예로니모는 “당신이 결정적인 순간에 말을 거는 바람에 그렇게 됐잖아? 수다도 때를 봐가며 떨어야지?”하고 받아쳤을 것이다. 우리 두 사람의 마음속에서는 이런 말들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비난이 이 순간에 아무 도움도 안 되고 차 안의 분위기를 급냉각시켜 함께 타고 있던 아이들까지 불편하게 했을 것이고, 부부모임에 가서도 냉랭했을 것이다.

“용문산만 볼 게 아니라 관악산까지 보려고 여기까지 왔나 봐. 야, 관악산 멋지네. 안 그래?”, “그러게, 관악산도 볼 만 하네?”

그렇게 서로 말을 주고받으며 차 안의 공기가 갑자기 썰렁해지는 것을 막았다. 그러고 나서는 오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따라 부르며 드라이브를 즐기는 남편 예로니모가 다시 사랑스러워졌다.


부부 싸움은 이렇게 사소한 일에서 시작한다. 순간을 참지 못하고 서로를 비난하거나 탓하는 말을 내뱉고 그것이 배우자의 자존심을 상하게 해서 큰 싸움으로 번지거나 입을 다물어버린 채 냉전의 시간으로 넘어가곤 한다. 한순간 내 감정을 쏟아내기 전에 잠깐만 생각해보면 이것이 싸울 일인지 싸울 필요도 없는 일인지 판단할 수 있다. 무조건 참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감정싸움과 갈등을 피하는 것이 부부 싸움의 지혜이다.

돌이켜보면 우리 부부도 전에는 불필요한 싸움을 많이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수많은 남자 중에 하필 왜 이렇게 까칠한 사람을 골랐을까? 내가 사람 보는 눈이 너무 없었나 봐” 하며 스스로를 탓하곤 했다. 그런 생각을 바꿔준 게 ME주말에서 들었던 ‘하느님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좋게, 사랑스럽게 만드셨다’는 이야기였다. 하느님께서 나를 그렇게 귀하게 지어주셨다면 나의 배우자인 예로니모도 나와 똑같이 귀하게, 사랑스럽게 만드셨고 우리 두 사람이 부부가 된 것은 분명 하느님의 계획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을 하니 예로니모가 전과 다르게 보였다. 내가 예로니모를 남편으로 택했다고 생각했을 때는 예로니모가 나에게 잘할 땐 사랑스럽지만, 못마땅한 점이 있을 때는 예로니모도 미웠고 그를 선택한 나 자신도 원망스러웠다. 그러나 우리 두 사람이 부부가 된 것이 하느님의 계획이었다고 생각하니 그 존재 자체가 귀하고 사랑스러워졌다. 그렇게 귀한 사람을 그동안 내가 얼마나 많이 화나게 하고 슬프게 하고 속상하게 했었나? 이렇게 소중한 사람을 화나게 하는 일은 하느님을 슬프게 하는 일이라는 생각을 한 뒤로 더 이상 배우자의 작은 실수 때문에 화내지 않게 되었다.


전에는 서로 다른 것 때문에 힘들었는데 지금은 서로 다름이 서로를 보완해주고 온전하게 해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딱 맞는 사람을 선택해 짝을 지어주셨음을 깨닫고 나니 하느님께 감사하며 살게 되었다. 우리 부부의 기도는 우리 두 사람을 통해 하느님이 이루고자 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여쭙고 그 뜻에 순종하며 살겠다는 다짐이며 약속이다. 그 계획 안에는 자녀를 낳아 기르는 일도 있고, 교회나 사회에서 하는 일도 있으며, 우리 부부가 함께 하고 있는 ME 운동도 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부부로 짝지어주셨음에 늘 감사드린다.




고유경(헬레나·ME 한국협의회 총무 분과 대표)
정석(예로니모)·고유경(헬레나) ME 한국협의회 총무 분과 대표 부부는 2006년 ME주말을 체험했다. 이후 현재까지 ME 서울협의회 발표 부부와 ME 한국협의회 총무 분과 대표 부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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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0-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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