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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 영성 이야기]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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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남편과 초등학교 동창이고 부산 문현본당 셀(Cell) 친구였다.

2년 전 남편은 뇌출혈로 쓰러져 뇌수술을 했고 수술 후 왼쪽 편마비로 전혀 움직일 수 없었다. 나는 남편에게 “몸이 성해도 마음이 지옥인 것 보다, 몸은 조금 불편하겠지만 마음이 평화로우면 그게 천국 아니겠냐”며 “주님께서 뜻이 있어 눕히셨고 주님께서 반드시 일으켜 세워주실 것이니 아무 걱정 하지 말고 우리 모든 것을 의탁하고 봉헌하자”며 두 손을 잡았다.

나는 정말 감사했다. 돈 번다고 미사 참례도 잘하지 않던 남편이었기에 이 시련으로 하느님의 아들로 우뚝 서기를 바랐다. 분명 설 수 있음을 확신했기에 “남편 요한 세례자를 살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하는 기도 외에는 생각나지 않았다.

남편은 재활치료를 열심히 했고 본인 중심에서 하느님 중심으로 모든 것을 생각하고 묵상하는 시간으로 하루를 보냈다. 그렇게 지내는 남편을 보면서 ‘과연 나도 이런 상황에서 남편처럼 모든 것을 주님에게 의탁하고 불편한 내 몸을 기쁨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하고 묵상하게 되었다.

그렇게 재활치료를 하고 여러 곳의 병원을 옮겨야 하는 상황에서 남편은 차츰 단단해지기도 하고 홀로서기를 시도해 보기도 했다. 우리 부부는 만나기만 하면 하느님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몰랐고 이야기를 나눌 때는 하나도 허투루 지나칠 것이 없는 귀한 시간들이었다.

이렇게 처음 겪게 되는 시련 속에서 우리에게는 하느님이 유일한 희망이었고 삶의 끈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제한적인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몸과 마음이 극도로 예민해 진 남편을 볼 때면 남편에게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러다가도 ‘꾸르실료 봉사를 하면서 처음 보는 참가자에게도 3박 4일을 웃음으로 대하면서 몸이 불편한 남편에게 웃음으로 대하지 못한다면 그게 무슨 봉사자라고 할 수 있겠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남편을 예수님 대하듯 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이렇듯 나약한 우리 부부이기에 하느님께 오롯이 의탁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니 바보같이 지금에야 깨닫게 되었다. 남편에게 너무 고맙고 미안함을…

주위 사람들이 남편 때문에 힘들겠다고, 고생한다고 이야기할 때 나는 진짜 그런 줄만 알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너무너무 부끄러워 눈물로 나의 교만을 회개하게 되었다. 내가 남편 때문에 고생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남편을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나를 영적으로 성장시키고 무장시키고 계심을…

나의 필요 없는 힘을 빼시기 위해, 그 힘을 빼기 위한 도구로 남편인 요한 세례자를 선택하신 주님의 뜻을 회개의 눈물로 깨닫는 순간.

내가 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내가 그동안 해온 모든 것들이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주님께서 허락하셨기에 이룰 수 있었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지금은 순간순간을 주님께 봉헌하고 의탁하고 있다.

병원에서 열심히 재활운동 중인 남편과 유학 중인 딸과 직장과 관련된 모든 것을 의탁하고 나니 하루하루가 이렇게 평화롭고 든든하고 기쁘다. 내가 웃으면 병원에 있는 남편도 힘이 나서 더 운동을 열심히 하게 된다고 자랑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헤헤 웃는다. 신이 나서 출근하는 발걸음도 가볍다. 차가운 겨울바람에 머플러를 꽁꽁 여미며 고개 들어 하늘을 보면서 속삭여도 본다.

“살아계신 하느님 아버지, 제가 사랑하는 것 알고 계시죠? 아주 많이 사랑합니다. 오늘도 제 손 꼭 잡아주세요. 헤헤.”




이성애(소화데레사·꾸르실료 한국 협의회 부회장)
2008년부터 부산교구 꾸르실료 사무국 봉사자와 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19년부터는 꾸르실료 한국 협의회 부회장과 부산교구 꾸르실료 부주간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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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0-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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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당신은 저의 주님. 당신 이름을 생각하시고 저를 위하여 행하소서. 당신의 자애가 선하시니 저를 구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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