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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살이 신앙살이] (520) 청빈을 즐기는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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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같은 공동체에서 생활했던 후배 신부님과 함께 겪은 일입니다. 그 해에 나는 그 신부님과 노동과 관상을 겸하는 어느 수녀원에서 피정을 함께 하기로 약속했습니다. 사실 몇 년에 한 번씩, 그 수녀원에서 피정을 하는 나는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이, 고즈넉한 수녀원의 분위기는 좋은데 단 한 가지, 대중교통이 너무나 불편하다는 것입니다. 터미널에서 그 수녀원까지 가는 버스는 하루에 단 세 번, 오전 9시, 낮 12시, 오후 5시! 그래서 수녀원을 잘 찾아가려면 버스 운행 시간을 맞추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너무나도 긴 시간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래서 후배 신부님과 나는 피정가기 전날, 수녀원에 가는 낮 12시 버스 시간을 맞추기로 했고, 아침에 부지런히 움직일 계획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아침, 나는 공동 전례를 마치고 미리 싸 놓은 짐을 챙겨서 수녀원 가는 버스 시간을 중심으로 움직였습니다. 그런데 후배 신부님이 갑자기 마무리해야 할 일이 생겼다며 시간을 늦추는 바람에, 예정된 출발 시간 보다 조금은 지체됐습니다. 나는 겉으로는 태연한 척 했지만, 속은 쬐끔 부글거렸고! 그래도 할 수 없다는 생각에 그냥 후배 신부님의 일이 빨리 끝나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이윽고 그 신부님의 일이 다 끝나자마자 우리는 서둘러 버스 타고, 지하철 타고, 시외버스 터미널로 가서 또 지방으로 내려가는 버스를 탔습니다. 날씨가 좋은 관계로 시외버스 맨 앞자리에 앉아 전망을 감상하며 이동했습니다. 약간 졸기도 했고! 하지만 그렇게 서두르고 서둘렀건만 결국 코앞에서 수녀원 가는 낮 12시 버스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하는 수 없이 저녁 5시 버스를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5시간 동안 버스를 기다린다는 것, 생각만 해도 아찔했습니다.

그런데 후배 신부님이 나를 쳐다보더니,

“신부님, 우리 택시 타고 들어갈까요?”

생각지도 못한 말이었습니다. 택시라! 나는 속으로 ‘그 곳까지 택시가 갈까! 택시 요금은 얼마나 될까!’ 그래도 5시간을 터미널에서 기다리는 것 보다 택시를 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동의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 후배 신부님은 여기, 저기 알아보더니 내게 말했습니다.

“수녀원 가는 택시가 많던데요. 그리고 미터 요금으로 간데요.”

터미널을 나와 보니 택시들이 줄지어 서 있었고, 우리는 순서에 따라 택시를 탔습니다. 택시를 타고 시골 길을 달리며 주변을 둘러보니 참 좋은 날씨와 멋진 풍경들이 운치있게 펼쳐 져 있는 듯 했습니다. 그렇게 20분 정도를 달렸더니 수녀원에 도착했고, 택시 요금은 1만2천원이 나왔습니다. 또한 수녀님들은 우리를 위해 맛난 점심을 차려 놓고 우리를 기쁘게 환대해 주었습니다. 그 날, 점심을 맛있게 먹고 피정 방으로 돌아온 나는 또 한 번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갖게 됐습니다.

택시를 안 탔으면 어떤 일이 있었을까! 아마 버스 놓쳤다고 형제에게 투덜거렸을 테고, 점심으로 국밥을 먹는데 2만 원 정도 들었을 것이고, 5시간 동안 터미널 안에서 불편하고 힘들게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을 텐데. 그런데 택시를 잘 이용했더니 모든 것이 해결되고, 오히려 수녀님들이 정성스럽게 준비해 주신 소박한 점심을 먹고 행복한 마음으로 피정을 할 수 있었으니!

진정한 청빈은 저녁 5시까지 무작정 버스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때에 택시도 이용할 수 있는 지혜를 줍니다. 진정한 청빈은 막히고 우둔한 생각을 부드럽게 해 줍니다. 진정한 청빈의 삶은 결국 우리가 하느님 때문에 넉넉하게 살아가는 삶을 의미합니다. 진정한 청빈의 삶은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을 충족시켜 주시는 하느님 안에서 진정 자유롭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성찰하게 합니다. 진정한 청빈은 지혜를 필요로 함을 깨닫게 됩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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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0-01-28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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