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8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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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 참 행복을 누리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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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계명은 아름답습니다. 그것은 구름 덮인 시나이산 위에서 거룩하신 하느님과 당신 백성 사이에 맺은 사랑의 약속이고, 마음을 다해 실천하면 자유와 행복을 누리는 생명의 길(신명 5장)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설교를 통해 완전한 사람이 되어 하느님 나라에 사는 사랑의 길을 밝히십니다. 주님의 계명이 은총의 선물임을 깨닫고 마음에 간직하며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된 인간은 존엄한 인격체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에게 자기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다스릴 수 있도록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이 자유의지로 하느님을 따름으로써 완전한 행복에 이르기를 바라십니다.(사목 헌장 41)

누구나 원하기만 하면 마음을 다해 주님의 법을 충실히 지키고 참된 행복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다 아시는 주님께서는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을 굽어보십니다. 사람들은 자신 앞에 놓여있는 물과 불, 생명과 죽음, 선과 악을 바라는 대로 선택합니다. 그런데 자신의 잘못을 주님과 남의 탓으로 돌리는 위선자들도 있습니다.(제1독서; 시편 119,1-2)

아담의 첫 범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인류는 창조질서를 파괴하는 죄의 보편성을 드러내 왔습니다. 인류의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위한 하느님의 신비로운 계획은 누구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이를 성경에 기록(이사 64,3)된 대로 주님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마련해두신 그분의 지혜라고 합니다. 때가 되어 성자와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이 신비가 우리에게 드러났습니다. 이것을 일찍이 깨달았다면 그리스도의 십자가상 희생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제2독서)

갈릴래아를 처음 방문하신 예수님의 활동을 마태오 복음은 가르침, 치유, 복음 선포로 요약(마태 4,23)합니다. 오늘의 가르침은 율법(계명)에 관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율법을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왔다고 말씀하시고, 제자들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와 바리사이의 의로움을 능가해야 하늘나라에 살 수 있다고 가르치십니다.(마태 5,17.20)

당시 율법과 성경을 가르치고 해석하는 율법 학자의 명성과 권위는 바빌론 유배 이후 더욱 높아졌습니다. 바리사이는 대부분 율법 학자로 법은 물론 정결례를 포함한 종교관습까지도 철저히 준수했기에 권위를 인정받았습니다.

율법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윤리적 토대로 삼는 십계명이 골자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 주제로 자주 등장하는 ‘의로움’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자기중심이 아닌 명예로운 형제애입니다. 율법의 완성은 하늘나라를 완성할 때까지 계명에 충실하여 작은 규정(‘한 자 한 획’)도 엄밀히 지키는 사랑의 소명입니다.(마태 5,18-19; 가톨릭 교리 2196)

오늘 말씀은 화해, 극기, 이혼 금지, 정직에 관한 가르침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고 하시며 옛 법을 받아들이시면서도, 대조적으로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하시며 법을 지키는 제자들의 명예로운 행동기준을 제시하십니다.

성(화)을 내는 것은 보복과 살인의 계기가 되고, ‘바보!’ ‘멍청이!’라는 모욕은 화로 치닫게 됨을 우리는 삶에서 자주 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를 금하라고 하십니다. 성전에 예물을 바치기에 앞서 원망을 품고 있는 형제와는 화해하고, 고소와 같은 불화 사건은 얼른 타협하라고 하십니다.

지중해 문화에서 간음은 죽음(신명 22,22-24)을 불러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음욕을 품고 여자를 바라보는 것은 이미 간음이라 하십니다. 죄를 지어 온몸이 불타는 지옥으로 던져지기보다는 신체 일부를 잃는 희생이 낫다고 하십니다.

이혼은 가정을 파괴하는 일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이혼장이 주어지면 이혼이 성립(신명 24,1-5)했습니다. 예수님은 이혼을 금하십니다. “둘이 한 몸”(창세 2,24)이기에 자기 십자가를 지라는 말씀입니다. 마태오 복음 사가는 불륜을 이혼의 유일한 사유로 듭니다. 우리 사회에서 주된 이혼 사유는 성격 차이라고 합니다. 성격은 사람마다 다른데도 말입니다,

맹세한다는 것은 죄에 약한 인간을 전제로 하는 일입니다. 곧 사람은 거짓말을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거짓 맹세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아예 맹세하지 마라.”고 가르치십니다. 하느님 앞에 떳떳한 진실을 밝히는데 맹세할 필요는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주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는 깨지기 쉬운 질그릇과 같은 존재임을 봅니다. 마음의 뿌리에서 나오는 살인, 간음, 이혼, 위선, 분노, 모독, 탐욕과 같은 악한 생각이 사랑의 마음을 해치고 사라지게 함을 깨닫습니다. 사랑은 자유의지로 결심하는 데서 꽃이 핍니다.

참 행복을 누리는 사랑의 계명을 선물로 주신 주님께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처럼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저지르지 않기에,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로마 13,10). 사랑의 실천으로 보람을 느끼는 마음의 평화가 하느님 나라에 행복입니다.




김창선(요한 세례자) 가톨릭영성독서지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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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0-02-11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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