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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쉬운 믿을교리 해설-아는 만큼 보인다] 58. 저승에 가신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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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은 ‘동굴의 비유’를 통해 진리를 깨달은 자의 고뇌와 소명을 잘 표현합니다. 그에 따르면 사람은 모두 동굴 안에서 태어난다고 합니다. 심지어 몸이 벽만 볼 수 있도록 기둥에 묶여있다고 말합니다. 각자가 보는 것은 벽면에 비친 어떤 물체들의 그림자뿐입니다. 벽에 괴물이 지나가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자신들 뒤에서 쥐 한 마리가 지나간 그림자일 뿐입니다. 사람은 이렇게 허상의 세상이 전부인 양 쥐 한 마리가 지나가는 것에도 놀라고 두려워하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어느 날 누군가가 기둥에 묶여있는 한 사람의 밧줄을 풀어주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뒤를 볼 수 있게 되었고 입구로 들어오는 밝은 빛도 보게 됩니다. 조금씩 빛을 따라서 동굴 밖으로 나온 그는 참 세상을 만나고 지금까지 자신이 알고 있었던 것은 허상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그는 빨리 동굴에 갇혀있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 진실을 알리고 싶어 합니다. 어둠과 허상의 세상으로 다시 들어가는 것이 끔찍한 일이기는 하였지만 그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합니다. 그러나 그의 말을 들어주는 이는 많지 않았습니다. 밧줄을 풀어주니 대부분은 오히려 그를 때리고 박해하였습니다. 그가 진리를 외치는 것을 멈추지 않자 결국 동굴의 사람들은 그를 죽입니다. 그리고 편안한 마음으로 스스로 다시 기둥에 묶여 자신들의 세상이 참 세상이라 믿으며 살아갑니다.

교리에 따르면 예수님께서 죽으셔서 저승, 혹은 셔올(지옥)에 가셨다고 합니다. 예전엔 지성소, 혹은 림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지금의 불붙는 지옥이라기보다는 죽은 이들이 심판을 위해 대기하는 곳이었습니다. 아직 그리스도께서 하늘 나라의 문을 여시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그 곳엔 선인과 악인이 섞여있었다고 보아야 합니다.(633항 참조)

그런데 사도들은 예수님께서 저승에 가신 사건을 ‘복음선포’와 연관시킵니다. 베드로 사도는 이 사건을 통해 “죽은 이들에게도 복음이 전해졌습니다”(1베드 4,6)라고 말합니다. 요한 사도는 “죽은 이들이 하느님 아들의 목소리를 듣고 또 그렇게 들은 이들이 살아날 때가 온다”(요한 5,25)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인용합니다. 죽은 이들에게도 복음이 전해져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죽음을 통하여 “구원의 복음 선포의 충만한 완성”(634항)을 저승에서 이루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건을 통해 우리에게도 “구원 사업이 모든 시대, 모든 장소의 모든 사람에게 미쳐야 한다”(634항)는 참 복음선포의 의미를 알려주셨습니다.

「성 토요일의 옛 강론」에서는 예수님의 저승에 가심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육신을 지니고 잠드셨으며, 옛적부터 잠들어 있던 이들을 깨우러 가셨기에 땅은 떨며 말을 잃었습니다. … 주님은 잃어버린 양인 원조 아담을 찾아가십니다. 주님은 죽음의 그늘 밑, 어두움 속에 앉아 있는 모든 이를 만나러 가시고자 하십니다.”(635항)

이 과정에서 그리스도의 죽음이 필연적으로 요구되었습니다. 그분은 “죽음과 저승의 열쇠를 쥐고 계신 분”(묵시 1,18)이시지만 당신 스스로 죽음을 받아들이시어 죽음 속에 머물고 있는 의인들을 구하러 지옥까지 내려가신 것입니다.

신학자들은 예수님께서 저승에서 복음을 선포하시고 의인들을 가려내어 하늘로 데리고 올라가신 이후에 그 곳이 진정 지옥으로 변했다고 말합니다. 하느님이 떠나시면 그곳이 지옥이 되는 것입니다.

진리를 깨달았고 자신 안에 사랑이 있다면 지옥까지라도 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만 한 명에게라도 더 복음을 전해 자신이 아는 진리를 공유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하느님께서 인간이 되셔서 세상으로 내려오셨고, 이 때문에 인간이 되신 분이 죽음의 세계까지 내려가셨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왜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 목숨까지 내어놓을 필요가 있는지 보여주는 성 토요일의 신비입니다.

이 신비는 우리도 어둠속 동굴로 들어가서 의인들을 불러내어 진리로 인도해야 하는 소명을 느끼게 해 줍니다. 죽음의 어둠속으로 다시 들어가는 것이 두렵다고 빛과 영광 가운데서만 머물려고 한다면, 예수님께서 “나는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다른 고을에도 전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도록 파견된 것이다”(루카 4,43)라고 제자들에게 하신 이 말씀을 되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 지옥까지 내려가셨다면, 그분의 뒤를 따르는 우리들은 어디까지 가야 하겠습니까?’




전삼용 신부
(수원교구 영성관 관장·수원가톨릭대 교수)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20-02-18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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