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5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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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살이 신앙살이] (526) 로만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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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조카들로부터 삼촌으로서 인정을 받지 못한 삶을 살지만, 그나마 약간은 나를 좋아하는 조카가 있습니다. 그 조카랑 예전에 제주도 부모님 댁에서 휴가를 지낼 때 일입니다. 어느 날, 조카랑 나는 성지순례를 했습니다. 당시 운전을 하던 나는 검은색 성직자 복장에 로만칼라는 빼고 있다가, 성지에 도착할 무렵이면 다시 목에 로만칼라를 끼우곤 했습니다. 그렇게 로만칼라를 뺐다 끼웠다 반복하는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던 조카가 물었습니다.

“삼촌, 왜 목에 있는 하얀 색 칼라를 뺐다 끼웠다 하는 거야?”

“응, 운전할 때면 답답하니까 빼고, 성지에 도착할 때면 다시 끼우는 거야.”

“삼촌, 뭐가 답답한데?”

“아, 삼촌 목이 짧고 굵잖아. 그래서 흰색 칼라를 하고 있으면 목이 조여서 그래.”

“그러면 삼촌이 살을 빼면 되잖아.”

“휴… 그래, 노력은 할께.”

사실 운전할 때 로만칼라는 하고 있으면, 상대방 운전자가 난폭하게 운전을 하거나 이상하게 할 때면 ‘욕’을 하거나, ‘빵빵이’를 누를 수가 없습니다. 반대로 약속 시간이 늦을 경우, 운전 법규를 지키지 않으려는 충동이 생길 때에 로만칼라가 나의 양심을 자극해서, 다시금 차분히 운전을 하도록 이끌어 줍니다. 그렇게 조카랑 성지순례를 하다가, 어느 덧 식사 시간이 됐습니다.

그래서 식당을 찾으려 하는데 그 동네 지리를 잘 몰라서 어느 성당에 차를 주차한 후 식당을 찾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근처 성당을 찾아 성당 마당에 주차를 한 후, 자연스럽게 로만칼라를 목에 다시 끼웠습니다. 이를 본 조카가 또 물었습니다.

“삼촌, 여기서는 목에 하얀 칼라를 왜 끼우는데?”

“응, 여기는 성당이잖아.”

“성당에서는 하얀 칼리 끼워야 해?”

“그럼, 삼촌이 성직자니까 성직자답게 끼워야지.”

그런 다음 차를 주차했고, 그 성당 관리하는 분을 찾아가 정중하게 인사를 한 후 주차 허락을 받고, 열쇠를 그 분에게 맡겼습니다. 그 분 역시 로만칼라를 한 나를 단번에 알아보고, ‘아무 걱정 말고 일 잘 보고 오라’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성당을 나오자마자, 무의식중에 목에 있는 로만칼라를 뺐습니다. 이 장면 또한 놓치지 않는 조카가 또 묻기를,

“삼촌, 지금은 왜 흰색 칼라는 빼는데?”

“아, 자유롭게 식당을 찾아 밥 먹으려고.”

“삼촌. 삼촌이 신부님인데 흰색 칼라를 해야 되는 거잖아. 이렇게 흰색 칼라를 안 할 거면 성당 마당에 주차는 왜 했는데?”

“아, 그건 로만칼라를 하고 성당 마당에 주차하면 신부님들에게 주차비를 안 받거든.”

“삼촌, 그러면 삼촌 흰색 칼라가 주차권이야?”

‘헐…’ 양심이 순간 ? 훅 하고 찔렸습니다. 조카의 말에 자존심도 꺾고 목에서 뺏던 로만칼라는 다시 끼웠습니다. 그리고 로만칼라를 한 채 식당을 찾았고, 그런 다음 우리는 식사를 했습니다. 식사하는 동안 주변 사람들 아무도 나와 조카에게 신경 쓰지 않았는데, 나 혼자만 괜히 행동이 부자유스러웠습니다.

또한 밥 먹는 내내, ‘삼촌, 로만칼라가 주차권이야!’ 하던 그 말이, 뭔가에 체한 듯 목구멍에 걸려 있었습니다. 나에게 로만칼라란 과연 뭘까! 조카 말대로 주차권인지, 아니면 이 세상에서 믿음과 희망과 사랑의 가치를 증명하고, 진실과 양심의 소리에 행동하는 모습을 드러내 주는 표징인지! 암튼 그 날, 조카에게 속마음이 들킨 것 같아, 부끄러움이 오래 갔습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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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0-03-10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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