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5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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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 영성 이야기] (18) 잘못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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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다. 그런데 함께 살아가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가 서로 너무 다르게 태어나고 자랐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낱낱이 개성을 주시고는 또 서로 돕고 어울리며 함께 살아가라 하신다. 다르니 서로 도울 수밖에 없긴 하다. 그런데 그 다름을 인정하기가 왜 이렇게도 힘든 일인지….

아주 부끄러운 고백을 하려고 한다. 실패한 사랑 이야기다.

어려서부터 딸처럼 여기며 가까이 둔 이가 있었다. 자랄 동안 이것저것을 해 주었고 성장하여 독립하였는데도 마음이 쓰였다. 마음뿐 아니라 문제가 생기면 함께 의논도 하며 시간과 노력을 보태곤 하였다. 그에게 아주 힘든 시기가 왔다. 나도 덩달아 그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바삐 지내야 했다. 큰 고통도 함께 나누었다. 그는 삶의 무게 탓인지 늘 어두웠다. 애써 거들어도 고맙다는 말 듣기가 참 힘들었다. 어느 때부터는 나도 조금씩 지쳤다. 그렇게 쏟아도 돌아오는 게 없으니 보람이 없었다. 그리고 더 안타까운 것은 그에게서 감사하는 마음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었다. 그 정도 상황이면 하느님께나 일을 거들어 준 이에게 감사할 만한 때에도 항상 속상해하고 불평뿐이었다. 감사할 줄 모르면 마음이 지옥일 텐데 하는 생각이 들어 안타까웠다.

어느 날 결국 나의 인내가 한계에 부딪혔다. 기껏 일을 해 주었는데도 또 냉랭한 반응이라 드디어 마음을 먹고 불러서 그럴 수가 있느냐고 따진 것이다. 참는 것만 능사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나는 당연히 그가 미안해할 줄 알았다. 자기 고통에만 빠져서 내 입장을 돌아보지 못해 그랬다고 답할 줄 알았다. 그런데 돌아온 것은 전혀 예상 밖의 반응이었다. 오히려 내게 항의를 했다. 그동안 나 때문에 너무 힘들었노라고, 늘 부족한 점을 지적만 당해 왔노라고 하였다. 펑펑 울음을 터뜨리는 그 앞에서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 긴 세월 동안 내 딴에 사랑이라고 쏟은 것이 그에게는 별로 그렇게 가닿지 못했던 것이다.

다행히, 그에게 말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나에게 침묵할 수 있는 지혜를 주었다. 그가 실컷 토해 낼 때까지 기다렸다. 내 속에서 올라오는 억울함을 꾹꾹 눌러 삼켰다. 내 생각을 하얗게 지우며 그의 마음이 되어 보려 애썼다.

예수님께서 유언처럼 남기신 말씀이 있으니,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4 일부)이다. 예수님 당신께서는 한없이 베푸셨지만, 우리에게는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다. 우리의 인간적 한계를 아시기에 우리가 당신처럼 무한히 사랑할 수는 없음을 아시고 하신 말씀인지도 모른다. 또한 그렇게 해야 사랑이 이 땅에 불어날 수 있음을 아시고서 그러셨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내가 그를 일방적으로 사랑한 것은 새 계명에 따른 사랑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왜곡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시작이 옳았다고 하여도 되돌아오는 사랑이 없다면 그것은 제대로 된 사랑이 아니다. 짝사랑은 아픈 것이며, 내리사랑은 권위적이거나 맹목적이기 쉽고, 치사랑은 굴욕적이고 의도적인 것으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

마음을 비우고 그의 입장이 되어 보니 이해되는 부분도 있었다. 나의 내리사랑이 그에게는 불평등한 것으로 비쳤을 것이다. 그래서 의지적으로 하느님께 도움을 청하며 나도 그에게 용서를 구했다. 아무리 나의 의도가 좋았다고 하더라도 그에게 사랑이 되지 못했다면 그건 참사랑이 아닌 것이다. 그 후 나와 그의 관계가 새롭게 시작되었다. 사랑이 사랑으로 돌아오도록 사랑하는 것, 서로 간의 사랑을 당부하신 예수님의 속마음을 아주 조금은 알 것 같아 기뻤다.




장정애 (마리아고레띠·마리아 사업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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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0-04-27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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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13장 34절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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