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5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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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 완벽한 신뢰와 결속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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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보이지 않는 것을 그 사람은 보고 있었다.” 스위스의 일간지 「노이어 쮜르허 자이퉁」 (Neue Zurcher Zeitung)이 ‘어둠속의 대화’라는 작품을 평하면서 쓴 문장입니다. 장애우 복지관에서 근무하는 수녀님을 통해 알게 된 이 전시회는, 시각이 차단된 상황에서 오히려 인간의 본질을 더 잘 파악하게 됨을, 그리고 어둠이라는 극단적 상황 속에서 시각 이외의 감각들을 활용하여 보다 진정한 소통에 이를 수 있음을 매우 감동적으로 전하고 있었습니다.

오늘 복음은 착한 목자와 그를 따르는 양떼의 모습을 소개합니다. 양들은 여러 목자들 중 유독 자기 목자의 소리를 구별하여 알아듣고, 동시에 목자는 자기 양들을 찾아내어 그 이름을 하나하나 부릅니다.(요한 10,3) 느낌, 체취, 목소리만으로 상대를 구별하여 알아내고 그만이 갖는 특성을 이름과 일치시켜 인식하는 관계는 특별한 관심과 섬세한 사랑이 아니라면 불가능한 것이고, 하느님과 우리가 바로 그런 관계에 있음을 선포하는 것이 오늘 복음의 주제입니다.


■ 복음의 맥락

본문은 크게 전반부와 후반부로 구분됩니다. 전반부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목자’에 비유하시고(요한 10,1-6) 후반부에서는 ‘양 우리의 문’에 비유하십니다.(7-10절) ‘목자’와 ‘양 우리의 문’은 모두 당시 근동지역의 목축업을 배경으로 할 때 이해되는 이미지들입니다. 우선 ‘목자’는 이스라엘 안에서 고대로부터 매우 친근하게 정착된 이미지였습니다. 구약성경의 가장 위대한 인물이었던 모세와 다윗은 백성의 영도자가 되기 전에 이미 실제로 양떼를 치던 목자였습니다. 일반적으로 당시 마을에는 주거지에서 떨어진 외곽에 큰 양 우리가 있었고, 그곳에서 양들을 공동으로 사육하였다고 합니다. 양 우리에는 여러 소유주의 양들이 무작위로 섞여 있었지만, 그들은 각자의 목자가 불러내는 소리를 알아듣고 그 목자의 음성에만 움직입니다. 두 번째로는 ‘문’에 대한 것인데, 양들이 머무는 울타리에는 일반적으로 문이 하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양들에게 출입 시의 혼란을 주지 않기 위해서이고, 양들을 강도나 도둑들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 복음의 본문은 이 상황을 적절히 활용하여 ‘양 우리의 문’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목자이지만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다른 데로 넘어 들어가는 자는 도둑이며 강도다.”(1절)라고 선언합니다.


■ 목자의 특징

오늘 복음의 본문은 착한 목자가 어떤 특성을 갖는지를 자세히 알려줍니다. 우선 목자는 “양들이 그의 목소리를 알아”듣는 존재입니다.(3절) 목자가 아닌 “낯선 사람은 따르지 않고 오히려 피해 달아”(4절) 나는데 이유는 양들이 “낯선 사람들의 목소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5절) 한국어 ‘알아듣다’에 해당되는 그리스어 ‘아쿠오’는 단순히 듣는 행위만을 의미하지 않고 조심스럽게 경청하여 식별하고 이해함을 의미합니다. 양들과 목자는 단순히 목소리만을 구별하여 따르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를 깊이 이해하고 아는 관계인 것입니다. 두 번째는 “양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알고 호명한다는 것입니다. “목자는 자기 양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 밖으로 데리고”(3절) 나갔다가 또다시 하나하나 양 우리로 들여보내는 일을 합니다. 매일같이 이렇게 이름을 부르고 함께 한다는 것은 지극히 단순한 작업이지만 그 어떤 리더십도 해내지 못하는 충실한 추종 관계를 형성합니다. 세 번째는 양들에 “앞장서” 걸어간다는 것입니다. ‘앞장서 감’은 모든 역경과 장애를 미리 마주하고 걷어내며 가야할 방향성을 결정함을 의미합니다. 착한 목자는 매일의 난관을 먼저 마주하고 양들과 함께 그 어려움을 극복하는 사람입니다. 네 번째는 그들을 따르게 하여 “풀밭을 찾아…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게”(9-10절) 한다는 것입니다. 서로의 소리를 알아듣고 들은 바를 행하며 이를 충실히 따르는 매일의 관계가 서로를 사랑으로 살려내는 기적과 구원이 됨을 의미합니다.

본문은 착한 목자와 반대되는 이미지도 소개합니다. ‘훔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이들입니다.(10절) 사실 도둑은 하느님 백성의 소유를 빼앗는 이들이고, 강도는 하느님 백성을 폭력과 위협으로 고통스럽게 하는 이들입니다. 하느님 백성을 갈취하고 생명을 도살하며 권위적 폭력으로 지배하는 이들은 목자가 아닌 도둑이며 강도임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 목자이시며 주님이시고 구원자이신 분

참된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의 발자취를 따르라고… 본보기를 남겨”(제2독서, 1베드 2,21) 주심으로써 진정한 목자가 되는 길을 알려주셨습니다. ‘본보기’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히포그람모스’는 아이들이 언어를 배울 때 반복적으로 따라 쓰기를 연습하는 일정한 샘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바로 이런 연습의 반복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발자취’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이크노스’ 역시 ‘발자국’이라고 번역해도 좋을 단어로서, 단순히 따를 뿐만 아니라 그분의 발걸음이 남긴 흔적을 그대로 밟아야 함을 알려줍니다. 그분께서 ‘본보기와 발자취’로 보여주신 모범의 구체적 내용은 “모욕을 당하시면서도 모욕으로 갚지 않으시고 고통을 당하시면서도 위협하지 않으시고 의롭게 심판하시는 분께 자신을 맡기”셨다는 것이고(23절) “우리의 죄를 당신의 몸에 친히 지시고 십자 나무에 달리시어 죄에서는 죽은 우리가 의로움을 위하여 살게 해주셨다”는 것입니다.(24절) 이것이 진정한 “영혼의 목자이시며 보호자”가 되는 길이며(25절) 이러한 맥락에서 사도 베드로는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 박은 예수님을 주님과 메시아로” 삼으셨다고 선포합니다.(제1독서, 사도 2,36) ‘목자’이신 그분은 이제 하느님에 의해 ‘주님’과 ‘메시아’로 임명되신 것입니다.


코로나19와의 전쟁 중에 대한민국 총선이 치러졌습니다. 새로 대표가 된 이들은 모두 행복과 복지를 약속했고 고통과 불평등, 불의로부터의 해방을 정직과 충성으로 이룩하겠다고 공약했습니다. 그러나 국민들은 늘 반복되어 온 역사의 법칙을 알고 있습니다. 모든 정치적 전망은 철저한 희생정신과 항구한 헌신, 국민에 대한 지독한 사랑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그렇지 못할 때는 혐오와 폭력, 비명이 난무하는 최악의 국회로 또 다시 전락하고 만다는 것을…. 중요한 것은 목소리만으로도 민중을 안심시키고 따를 수 있게 하는 완벽한 신뢰 관계이며, 이 관계는 어쩌면 어둠 속에서도 온전히 그의 소리를 믿고 따르는 절대적 결속에서만 가능합니다. 그런 관계라면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오히려 더 강한 빛을 선명하게 볼 수 있고 강인한 신념과 사랑이 소통되는 기적을 이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세상은 이러한 기적을 ‘혁명’이라 부르고 우리는 이를 ‘복음’이라고 부릅니다.




김혜윤 수녀 (미리내성모성심수녀회 총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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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0-04-27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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