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7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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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 영성 이야기]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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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감명 깊게 본 드라마 ‘눈이 부시게’에서 내 마음을 사로잡은 단어는 ‘애틋함’이었다. 25살 김혜자는 자기 꿈에 한참 못 미치는 자신이 후지지만 애틋하다고 했고, 78세 김혜자는 “나는 내가 애틋해. 너도 네 인생이 애틋했으면 좋겠어”라고 말한다. 준하는 “평생 나라는 존재를 품지 못해 괴로웠어요. 나도 못 끌어안는 나를 끌어안고 울어준 사람은 그 사람이 처음이었어요”라고 말했다.

애틋하다는 감정은 뭘까? “하느님께서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요한3,16) 당신이 지으신 세상이 너무나 혼란스럽고 인간이 죄에 빠지고 온갖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것을 보시며 저들은 이제 희망이 없으니 없애 버리고 다른 세상을 지어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으시고 당신의 외아들을 보내신 하느님의 그 마음이 아닐까? 훌륭하고 흠이 없어서가 아니라 불완전하고 밉상스럽지만 그 존재가 너무나 소중해서 아끼는 그 마음 아닐까?

나는 내가 미운 오리 새끼 같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 땐 나도 내가 싫었다. 살 가치가 없다는 생각을 했던 때도 있었다.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타인을, 특히 배우자를 제대로 사랑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달은 건 혼인하고 나서였다. 신혼 때 예로니모와 말다툼이라도 하게 되면 나는 당당하게 내 주장을 내세우며 싸우지 못하고 눈물부터 흘리며 의기소침해지곤 했다. 그런 나의 모습을 볼 때 예로니모는 자신이 나쁜 사람이 된 것 같다며 황당해했다. 한번 싸우고 나면 다시 화해하기도 힘드니 점점 싸움을 회피하게 되었고,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 쌓아두다 보니 갈등의 골은 점점 깊어갔다.

그런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의아해했던 예로니모도 조금씩 나의 낮은 자존감에 대해 알게 되고 그로 인한 나의 행동 방식에 대해서도 이해하게 되었다. 예로니모는 그런 나에 대해 실망하고 짜증스러웠겠지만 또 애틋했던 것 같다. 자기가 보기엔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 스스로를 인정하지 않고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안타까웠다고 했다. 예로니모는 내가 어릴 때 충분히 받지 못한 사랑까지 다 해주겠다는 결심을 했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그 사랑을 믿지 않았지만 한참의 시간이 흐른 어느 날 문득 내가 사랑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얘기를 하니 예로니모는 “다 내 덕인 줄 알아. 내가 당신에게 얼마나 정성을 들였는지 알아? 놀랍게 변한 당신을 볼 때 내가 정성껏 키운 화초에 꽃이 활짝 핀 것을 볼 때처럼 기쁘고 뿌듯해”라고 말한다. 남편과 하느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게 되면서 생긴 변화였다. 내가 애틋해지니 이제야 남편의 한결같은 사랑과 헌신이 보였다. 그의 외로움도 보였고 나에게 해주지 않은 것들에 대해 서운해 하기보다 해준 것에 대해 감사하게 되었다.

혼인 생활은 “너희도 나처럼 서로 애틋해 하여라”는 하느님의 부르심이다. 너무너무 사랑해서 한시도 떨어져 있기 싫어 혼인을 했지만 그 사랑은 얼마 가지 않아 시들해지고 서로에 대한 실망이 거듭되다 보면 환멸의 시간이 찾아온다. 배우자를 외롭게 내버려 두기도 하고 끊임없는 비난을 쏟아내어 환멸의 나락에 빠져들기도 한다. 이때 애틋함으로 서로를 바라볼 수만 있어도 다시 사랑할 수 있는 힘을 얻는다. 배우자의 수많은 단점과 허물에도 불구하고 그가 애틋하게 느껴지는 힘은 하느님에게서 온다. 하느님이 나를 그토록 사랑하셨음을 믿는다면 나도 그도 정말 애틋한 존재들임을 가슴으로 절절히 느낄 수 있다.

오늘 배우자에게 “나는 당신이 정말 애틋해요”라고 말해보자. 그 순간 눈물나게 애틋한 그(그녀)가 내 앞에 서 있을 것이다.



고유경 (헬레나·ME 한국협의회 총무 분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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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0-06-30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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