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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별 보면서 기도해요"

서울 동대문시장 야간 의류 노점상 강복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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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대문시장 노점상 강복녀씨는 마음이 부자다.
손님에게 인사하는 그의 환한 얼굴에서 넉넉한 마음을 느낄 수 있다
전대식 기자   jfaco510@pbc.co.kr
 
 새해가 밝았다. 해가 바뀌었다고 우리네 삶이 하루 아침에 바뀔 것은 없지만 그래도 저마다 새로운 희망을 가슴에 품고 정해년(丁亥年) 새아침을 맞는다. 삶의 현장에서 성실하게 땀흘리며 살아가는 우리 이웃의 꿈과 희망을 들어본다. 비록 삶은 가난하지만 꿈과 희망까지 가난하지는 않다.

 
 "추위요? 장사 끝내고 집에 들어가면 몸에서 얼음 녹는 소리가 나죠."

 가판대 백열등과 의류상가 네온사인이 불야성을 이루는 서울 동대문 새벽 의류시장.

 대로변에서 여성의류 노점상을 하는 강복녀(바실리아, 55)씨는 "새벽 2~4시에는 정말 춥다"며 "노점상보다 한국의 사계(四季)를 피부로 느끼는 직업이 또 있을까 싶다"며 웃는다.

 그는 밤 8시부터 이튿날 새벽 5시까지 장사를 한다. 시장에서 낮밤을 바꿔 산 게 어느덧 14년째다.

 "재래시장 경기야 더 말해서 뭘해요. 많이 죽었어요. 한 주에 한번 올라오던 지방 손님이 요즘은 격주, 어떨 때는 석 주에 한번씩 올라와요."

 요즘은 단속도 부쩍 심해졌다. 시장이건 구청장이건 단체장이 바뀔 때마다 치르는 홍역이기는 하지만 단속반원들을 피해 좌판을 접고 펴는 일은 여간 힘들지 않다. 때로는 옆 노점상과 1~2㎝ 자리다툼을 하느라 언성을 높여야 하는 게 이곳의 냉혹한 생존경쟁 원리다.

 하지만 강씨는 "욕심을 낮추면 싸울 일도 없고 고단할 것도 없다"고 한다.

 "저기 보세요. 저 지게꾼 아저씨들은 저보다 더 가난한 분들이에요. 여기 앉아서 저분들이 용기 잃지 말고 살게 해달라는 기도를 하룻밤에도 몇번씩 해요."

 강씨는 마음이 백만장자 부자다. 그는 가난한 이들이 모여 있는 시장통을 나자렛으로 여긴다. 다리를 질질 끌고 와서 구걸하는 장애인이 작은 예수처럼 보이기에 빈손으로 돌려보내는 법이 없다. 산더미처럼 짐을 얹은 손수레를 끌고가는 사람을 위해서도 화살기도를 바친다. 그리고 장사가 끝나면 어김없이 동대문시장성당(주임 강재흥 신부)으로 달려가 새벽 6시 미사를 봉헌하고 귀가한다.

 그는 한때 `사모님` 소리를 듣던 가정주부였다. 남편의 사업실패로 시장에 나왔다. 남편에게 위로와 용기를 줘야 할 아내이자 두 아이 어머니이기에 낯설고 험한 시장에서 견딜 수 있었다.

 "행복과 불행은 삶의 가치를 어디에 두고 사느냐에 달려 있어요. 사람들이 `돈! 돈!`하지만 재물이 행복을 가져다주지는 않아요. 저처럼 바닥까지 내려가본 사람은 헛되고 헛된 것이 재물이란 걸 알지요."

 그의 새해 소망은 `더불어 사는 세상`이다.  

 그는 의대를 졸업하고 이달 의사국가고시를 보는 큰딸 박 데레사에게 "잠깐 머물다 하느님이 부르시면 가는 게 인생이니 돈 벌 생각말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사 한대 더 놔주는 의사가 되라"고 누누이 이른다.

 그는 추위를 걱정하는 기자에게 "달과 별을 보면서 기도 한번 더 할 수 있는 게 노점상"이라며 밤추위를 녹이고도 남을 따뜻한 미소를 짓는다.

김원철 기자wckim@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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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07-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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