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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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세 치매 어머니께 바치는 63세 아들의 사모곡(思母曲)

제4회 평화상조 孝 부모사랑 수기 공모 대상작 / 황규태(이시도로, 63, 서울 신내동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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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난히 추웠던 임진년의 겨울을 지내고 이제 봄기운이 스며든다는 청명 절기를 앞둔 3월 끝자락에 접어들었습니다.

 방 안에 있는 쓰레기통에다 실례하시고, 실례한 그 쓰레기통을 싱크대에서 깨끗하게 작업을 하시고, 가스레인지에서 불을 붙이다 옆으로 번져 큰 소동이 일어나고…. 밤만 되면 고향으로 가야 된다고 몇 번이고 가방을 들고 나가시던 일이 벌써 5년 전이네요.

 어쩔 수 없이 직접 모시지 못하고 어머니 고향으로 모시고 가 치매전문 노인병동에 입원시키고 초점 잃은 눈으로 물끄러미 저를 쳐다보시던 어머니를 뒤로한 채 서울로 돌아올 때 저의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슬프고 아팠습니다.

 어머니, 제가 어렸을 때 언제나 단정하게 머리를 빗으시고 한복을 즐겨 입으신 어머니는 참 고우셨습니다. 음식 솜씨도 대단하셨고요. 불같은 아버지 성격을 인내로 참아 내시고 어린 다섯 남매를 정성으로 키워 주셨죠.

 어머니는 종종 저에게 옛날 얘기를 해주셨습니다. 꽃 같은 나이에 일본에서 멋쟁이 청년 아버지를 만났을 때의 수줍었던 연애 얘기며, 해방 후 귀국하시어 매섭고 힘들었던 시집살이 하며, 6ㆍ25사변이 일어나 피난 다니실 때 일이며, 토사곽란에 심한 설사로 초주검이 된 2살 아기인 저를 업고, 숨어 지내던 의사 선생님을 수소문하여 30리 길을 달려간 어머니의 뚝심 얘기며….

 생활환경과 의료환경이 열악했던 1950년대에 넘어지고 깨지고 다치는, 성하지 못한 어린 자식들을 온전히 사랑과 정성으로 키워 주셨음에 그저 고맙다는 말씀밖에 드릴 수 없음을 용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이제 자식의 얼굴과 이름도 잊어버리신 어머니. 지난달 어머니를 뵈러 갔을 때 휠체어에 몸을 의지한 채 저에게 누구시냐고 물으시며 한참을 보시다가 동생 이름을 부르며 반갑다고 손을 잡던 우리 어머니. 겉으로는 웃었지만 속으로는 울었습니다.

 병동 간호사가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옆 병상 할머니와 틀니를 바꿔 낀 채 일주일을 지냈다는 얘기며, 고함을 치며 행패를 부리는 다른 할머니에게 다가가 조근조근 얘기하며 진정시켜 주시는 어머니가 병동에서 최고 멋쟁이 할머니라고 칭찬을 해주시더군요.

 어머니를 뵙고 돌아설 때면 언제나 자애로운 눈길로 저에게 말씀해주셨죠.

 "조심해서 서울 잘 올라가거라. 네 가족에게도 안부 전해다오. 사랑한다, 아들아. 어미의 마음을 잘 알겠지?"라고 하시는 어머니의 마음을 어찌 제가 모르겠습니까.

 사랑하는 어머니, 이제 저도 손주가 셋이나 생겼습니다. 훈이, 건이, 민이. 얼마나 귀엽고 사랑스러운지 어머니는 아시겠죠? 한 번은 훈이가 기침 감기에 폐렴 증세로 밤새 열이 펄펄 올라 곤욕을 치르는데, 어린 손주가 축 늘어져 누워 있는 모습이 어찌나 안쓰러운지 밤잠을 설칠 때, 불현듯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르더군요. `우리 어머니도 나를 이렇게 키워 주셨구나. 얼마나 애간장을 태우면서 사랑의 손길로 보살펴 주셨겠나` 생각하니 그저 고마움과 가슴 뭉클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냉면과 추어탕을 참 좋아하신 어머니, 언제부터인가 어머니가 좋아하시던 음식을 이제 먹지 않습니다. 어머니를 생각하면 목에 넘어가지를 않더군요. 육십이 넘은 나이에 이제 어머니의 사랑을 느끼는 저이기에 죄책감과 회한에 너무도 죄송하고 부끄러울 뿐입니다.

 88세에 멈춰버린 우리 어머니. 해가 바뀌어 어머니를 뵈러 가 "올해 연세가 몇이신가요?"하고 장난스럽게 물어보면 언제나 88세라고 말씀하셨죠. 어머니, 그냥 88세에 머물러 계시고, 언제나 저희 곁에서 저희를 지켜 주시고 어머니께서 주신 사랑과 고마움을 가슴에 품고 살아갈 수 있도록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살아 계심에 감사드리고, 언제나 저희에게 사랑과 평화의 눈길을 보내 주시고 용기를 주십시오. 어머니, 감사드리고 고맙습니다. 병원 뒷산 진달래가 활짝 피는 5월에 뵈러 가겠습니다. 건강하시기를 두 손 모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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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경남 양산 신세계노인병원 치매병동 502호 병상에 계시는 94세 어머니께 바치는 글로, (주)평화상조와 학교법인 가톨릭학원이 실시한 제4회 孝(효) 부모사랑 수기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았다.   ▶관련 기사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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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3-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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