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남 서남단 대동강변을 따라 이어진 평남선 철도 종점이 진남포다. 1897년 개항과 더불어 관서의 관문이 된 진남포시는 재령평야를 배후에 둔 쌀 생산지이자 경ㆍ중공업이 두루 발전한 대중국 제1무역항으로 성장한다. 산업 물동량만으로는 부산, 인천을 잇는 국내 제3의 항구도시에 1900년 본당이 설정된 것은 당연했다.
이 성당은 특히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 홍석구(Josephus Wilhelm, 1860~1938) 신부와 안중근(토마스,1879~1910) 의사의 인연이 얽힌 것으로도 유명하다. 1897년 10월 한낱 작은 어촌 포구의 미래를 내다보고 평안남도 진남포시 용정리(현 남포직할시 와우도구역 용정동) 일대에 3만 3057.85㎡(1만 평)에 이르는 부지를 매입, 평양본당 관할 공소를 설립한 주인공이 홍 신부였다. 또 훗날 본당 부설 돈의학교 제2대 교장으로 부임, 관서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한 인물이 안 의사였던 것이다. 이 학교는 비록 1916년 문을 닫았지만, 1921년 해성학원, 1930년 사립학교 인가를 받은 평의학교로 그 맥이 이어져 문맹 퇴치와 인재 양성, 성소 계발에 기여한다.
그림은 1933년 한양 절충식으로 지은 새 성당(뒤 왼쪽)과 평의학교 건물(앞)이다. 한 면은 바다에 접하고 다른 세 면은 언덕과 과수원으로 둘러싸인 성당은 신자석만 800석에 이르는 큰 성당으로, 벽돌조 및 목조 트러스가 혼재된 방식으로 지어졌다. 또 성당 지붕과 종탑은 전통 기와로 마감처리를 한 뒤 십자가를 세운 모습이었으며, 1927년 신축한 신의주성당과 유사한 구조 및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진남포시는 6ㆍ25전쟁 직후인 1952년 남포시로 이름이 바뀌었으며 현재는 강서군과 용강군을 통합, 북측 행정구역상 남포직할시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