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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구·조명혜 부부의 펜화성지순례] <26>평양교구 순천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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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남 한복판 순천시와 평북 만포시, 멀리는 중국 지린성 지안(輯安)시까지 이어지는 만포선, 평양 서포역과 함남 고원역을 잇는 평원선이 교차하는 분기점이 순천이다. 대동강 상류에 자리하고 있으니 뱃길도 원활하다. 당연히 교통 요지다. 이러니 본당이 설정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순천 인근 은산(평남 순천군 은산면 조산리)에 먼저 본당이 세워졌다. 은산본당이다. 1863년 제4대 조선대목구장 시메온 프랑수와 베르뇌 주교에 의해 은산에 공소공동체가 설립됐던 인연 때문이었다. 물론 이 공동체는 병인대박해로 와해됐지만, 1898년 숙천 섭가지본당 관할 공소로 은산공소가 또 다시 세워져 신앙의 맥을 이어나갔으며 1926년 은산본당이 설립되기에 이른다.

 하지만 이 본당은 2년여 만에 폐쇄되고 1928년 7월 평안남도 순천군 순천읍 관상리(현 평남 순천시 순천동)로 이전하는 순천본당이 지역 복음화의 사명을 이어받는다. 순천본당은 설정 5년 만인 1933년이 되면서 공소 20개 소에 신자만 600여 명에 이르는 공동체로 성장한다. 교세가 날로 늘어남에 따라 평양교구에선 순천본당 공소이던 성천 지방 일대를 분할, 1936년 5월 성천(일명 석우리) 본당을 신설하기도 했다.

 순천본당은 그러나 해방 직전인 1944년 11월 교구 사제 부족으로 폐쇄되면서 기림리본당 관할이 된다. 이어 1949년 12월 기림리본당 주임 이재호 신부가 공산정권에 연행되면서 순천공동체는 사실상 와해된다. 아쉽게도 순천본당의 전신인 은산본당이나 성천본당 관련 사진은 현재 거의 남아있지 않다.

 이번에 그린 그림은 1928년 순천으로 본당을 이전할 당시에 한식으로 건축한 성당(왼쪽)과 언덕배기에 지은 사제관이다. 한옥 성당은 600여 명에 이르는 신자들을 수용하기에는 규모가 다소 작아보이지만, 본당 관할로 20개 공소 공동체가 있고 중평리ㆍ조산리ㆍ자산ㆍ북창ㆍ신창ㆍ맹산 공소엔 큰 강당이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오늘의 눈으로 보면 작은 공동체지만, 순천성당은 평남 동북부 복음화의 주요 거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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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3-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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