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3일
교구/주교회의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선교지에서 온 편지] 볼리비아 알토(3) 척박한 선교지 현실 -김효진 수녀(하느님 섭리의 딸 수녀회)

그들과 함께 보고, 느끼고, 믿어야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 가난한 이들과 함께 살아가면서 `찾아나서는 선교`가 절실하다는 것을 느꼈다.
사진은 방문한 가정의 가족들과 함께 한 모습.
 


 
▲ 언뜻 보면 고물상 같지만 원주민 집 마당이다.
 


 
▲ 본당 축제 때 청년들과 함께하고 있는 필자.
 
 오랜 식민 지배를 받은 볼리비아는 잦은 내전으로 인해 대통령 임기가 1년을 넘은 적이 없었다. 그러다가 코카(코카인을 만드는 식물)잎을 팔던 조합원 대표가 첫 원주민 출신 대통령이 되자 알토 원주민들은 가톨릭을 박해하고 수도원에서 생활하던 수도자들을 몰아냈다.

 이들은 수도원 담을 부수고 돌을 던졌다. 수도원 건물을 빼앗기 위해 벌인 일이었다. 무료 급식을 하며 가난한 이들을 돌보던 수녀들은 결국 본국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지금도 나라가 불안정하다. 주민들은 툭하면 시위를 하고 거리 행진을 한다. 알토의 모든 원주민들이 라파스 시내까지 긴 행렬을 지어 해발 1000m 아래로 내려가면 거리는 모두 마비가 된다. 주로 가스비ㆍ버스비, 공공요금이나 설탕값 인상을 거부하는 시위를 한다. 때로는 미국 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한다. 알토에서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들을 본국으로 쫓아내기도 한다.

 동네를 걷다 보면 길모퉁이 전봇대 꼭대기에 사람 모습을 한 인형이 섬뜩하게 매달려 있다. 만약 도둑질을 하다가 잡히면 이렇게 목이 매달린 채 죽는다는 뜻이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을 원칙으로 하는 인디오 법으로 처단을 한다. 이웃끼리 땅 문제, 가축 문제로 대대로 원수가 돼 서로 복수혈전을 벌인다. 알토 원주민들은 지금도 그 법에 충실해 반드시 앙갚음을 한다.

 남미에서는 재의 수요일 전 주일을 카니발(carnaval)이라고 해서 큰 축제를 연다. 우리 본당 청년들도 챠야(challa) 축제를 한다며 소독약과 꽃가루, 풍선, 폭죽을 샀다. 우리 청년들은 성당 건물 구석구석에 소독약을 뿌리며 씻는 예식을 하고 꽃가루를 뿌리며 무언가를 빌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원주민들 풍습으로 마치 `굿판`과 비슷한 미신행위였다. 이것을 하지 않으면 액운이 깃들어 가족이 아프거나 사고가 나거나 좋지 않은 일이 생긴다고 믿고 있다.

 이들 문화는 그동안 내가 소중히 여기며 지켜온 가톨릭 신앙과 너무나 동떨어져 있다. 때로는 나를 매우 당황스럽게 하고 불안하게 만든다. 가톨릭 신앙과 이들의 민간 신앙, 이 둘을 서로 조화롭게 하고 순화하고 일치시키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은 과업이며 매우 엄청난 도전임을 절실하게 느낀다.

 "민간 신앙이 적절히 선도되고 특히 복음 선교의 방향으로 선도된다면 가치 있는 일이 될 것입니다. 민간 신앙은 순박하고 가난한 사람들만이 알아볼 수 있는 하느님께 대한 갈망을 표현하고 있습니다"(현대의 복음 선교 48항).

 유치원에 가야 할 아이들이 버스 안내양, 구두닦이를 하고 시장 바닥에서 엄마 일을 돕는다. 공부나 꿈과는 점점 멀어져만 가고 있다. 거리 노인들은 부대자루나 지게를 지고 쓰레기장을 뒤지고 있다.

 대낮부터 술주정을 하고 마약에 취해 있는 청소년들을 거리에서 심심치 않게 발견한다. 소매치기와 강도는 시장을 누비고 다닌다. 복잡한 버스터미널 근처 으슥한 골목길에서는 10살도 안된 어린 꼬마가 소매치기하는 법을 열심히 연습하고 있다.

 내 눈앞에 펼쳐진 현실은 내게 선교의 시작을 교회 밖 `아웃사이더`를 찾아 나서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줬다. 예수님이 그러셨듯이 가난한 이를 찾아 나서는 선교를 우선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줬다. 고통 받는 이들, 버림 받은 이들, 죄인들을 찾아 나서고 그들을 구원의 가장 우선적인 대상으로 삼으셨던 예수님 발자취를 돌아보게 만든다.

 그러나 찾아나서는 선교는 많은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숨쉬기도 힘든 4300m 고산에서 개떼들과 싸워야 하고, 거센 바람과 흙먼지로 인해 눈뜨기도 힘든 이곳은 걷는 것 자체가 어려운 지역이다.

 그런 어려움을 알았는지 가정 방문에 청년들이 함께 동참해줬다. 골목골목 청년들과 함께 다니다 보니 힘든 줄을 몰랐다. 이들 삶을 좀 더 가까이에서 보고 느낄 수가 있었다.

 집집마다 사는 모습을 봤다. 고물상인지 쓰레기장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가구도 수도시설도 없었다. 부엌은 엉망이었다. 화장실 문짝은 하나만 겨우 달려 있었다. 둘러보니 쓸만한 물건들은 하나도 없었다. 무너진 담벼락 앞에는 터진 타이어와 깨진 유리 조각들, 녹슨 양철 지붕들과 깡통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그 속에서 아이들이 공차기를 하고 있다.

 가정 방문을 할 때 주인이 음식을 권하면 괴롭기 짝이 없다.



가톨릭평화신문  2013-10-27

관련뉴스

말씀사탕2024. 5. 3

시편 57장 4절
하느님께서 당신 자애와 진실을 보내시리라.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