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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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지에서 온 편지] 볼리비아 알토(4.끝) 삶의 우선 순위- 김효진 수녀(하느님 섭리의 딸 수녀회)

''지금의 삶''으로 충실하게 복음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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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곳 아이들은 간식을 나눠주면 다 먹지 않고 집으로 가져가 가족들과 나눠 먹는다.
간식을 먹고 있는 필자와 아이들.
 


 
▲ 견진교리반 아이들과 함께하고 있는 필자.
 


 
▲ 본당 청년들과 처음으로 소풍을 간 `달의 계곡`.
 

 처음 스페인어를 배울 때 아이티에서 온 신학생들과 함께 수업을 받았다. 그 해에 아이티는 대지진으로 폐허가 됐고 신학교 건물도 파괴돼 신학생들이 머물 곳이 없었다. 그래서 언어공부를 위해 온 것이다. 그들은 반기문 UN총장을 "아주 훌륭한 사람"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고 "최고!"라고 극찬을 했다.

 나라 전체가 지진으로 폐허가 됐고 가족 중에도 지진으로 죽은 사람들이 있다며 눈물을 글썽였지만 이들은 꿋꿋했고 신앙심도 강했다. 하느님께 대한 굳은 믿음과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다. 늘 밝고 씩씩했다.

 기말시험을 앞두고 나를 비롯한 한국 학생들은 열심히 시험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아이티 신학생들은 교실에 가방만 던져두고 밖으로 나가 다른 과 학생들과 친분을 맺기 위해 여념이 없었다.

 "시험공부는 안하느냐?"고 물었더니 "이미 모든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 70점을 못 넘으면 다음 단계로 올라갈 수 없어 한국 학생들은 눈에 불을 켜고 문법 공부에 열중했다. 아이티 신학생들은 언어를 즐기고 배우는 것을 목적으로 했지만 우리는 오로지 성적에만 의존하는 모습이었다.

 마지막 수업 때 각자 자기 나라 음식을 만들어 나누는 시간이 있었다. 한국 학생들은 데우기만 하면 요리가 완성될 수 있도록 모든 재료를 준비해왔다. 그래서 10분 만에 요리가 끝나버리고 말았다. 반면 아이티 신학생들은 주어진 시간 동안 각종 야채를 씻었다. 맷돌까지 가지고 와서 가루를 내고 양배추를 썰면서 콧노래를 부르고 춤까지 춰가며 신나게 요리를 만들었다.

 우리는 미래를 걱정하고 준비하느라 정말 중요한 `지금`을 누리지 못하고 놓쳤던 것이다. 10분 만에 요리를 끝낸 우리는 할 일이 없어서 이리저리 기웃거리다가 결국 아이티 신학생들의 요리를 도왔다.

 미국에서 교포사목을 하시는 신부님께서 한인 신자들의 안타까운 삶을 말씀해 주신 적이 있다. 한국 신자들은 정말 열심히 일해서 수영장이 딸린 커다란 집을 마련하지만 집 대출금을 갚기 위해 주일에도 일을 나간다고 한다. 그래서 정작 그 수영장에서 수영을 즐기는 이들은 그 집에서 일하는 멕시코인들이라고 했다.

 지금 이 순간을 누릴 줄 모르고 앞을 향해 달려가기만 하며 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긴장하고 미리 준비하는 삶의 방식 안에서는 어쩌면 현재는 영원히 잡히지 않는 미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장 귀퉁이에서 얼마 되지 않는 되는 과일을 파는 할머니에게 "과일을 다 사고 싶은데 얼마냐"고 물었더니 할머니는 "다 팔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이유를 여쭤보니 "지금 과일을 다 팔면 오늘 하루 뭘 하느냐"는 것이었다. 한국인 정서라면 얼른 다 팔고 다시 물건을 해 오든지 일찍 집으로 가서 다른 일을 할 텐데 이들은 그러지 않았다.

 이들은 그날 하루에 목적이 있다. 우리는 이들의 모습을 보고 게으르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더 열심히 노력을 하면 분명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 갈 수 있는데 이들은 바로 지금이 행복하다고 말한다. 행복은 더 많이 이루고 갖는 것에 있지 않고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삶 안에 찾아온다는 것을 보여준다. 어쩌면 이들은 가장 충실하게 삶으로 복음을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청년들과 함께 라파스 시내에 있는 `달의 계곡`으로 첫 소풍을 다녀왔다. 이름 그대로 마치 달 표면에 착륙한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경치였다. 시내에 있는 제일 큰 상점에도 들어갔다. 먹고 싶은 것을 고르라고 했더니 청년들은 선뜻 고르지 못했다. 처음 보는 과자라며 망설이고 있었다.

 첫영성체반ㆍ견진교리반 아이들과 한바탕 신나게 놀고 난 후 간식을 나눠주면 아이들은 먹지 않고 집으로 가져간다. 집에서 형제들과 함께 나눠먹기 위해서다. 아직 학교에 들어가지도 않은 꼬맹이들도 모자에 과자를 챙긴다.

 공부방 아이들과 수업을 하다보면 아이들 집안 이야기가 술술 나온다. 만날 집에서 술만 마신다는 아빠, 집을 나가서 돌아오지 않는 아빠 이야기를 하는 아이도 있다. 가정에서 폭력이 쉽게 행해지고 있었다. 원주민들은 자식을 소유물로 여기고 온갖 궂은일을 시킨다.

 여자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부엌일을 도맡아서 하기 때문에 요리와 설거지의 달인이 된다. 밭일도 거뜬히 해낸다. 안타까운 것은 친인척들에 의한 성폭력에도 쉽게 노출돼 있다는 것이다.



가톨릭평화신문  2013-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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