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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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지에서 온 편지] 필리핀(1) ''스모킹 마운틴'' 나보타스를 돌아보며- 박찬인 신부(대전교구)

길거리 미사, 가장 낮은 곳에 함께하신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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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학연수를 하는 동안 `스모킹 마운틴`이라 불리는 마닐라 빈민 지역 나보타스를 방문했다.
악취가 진동해 처음에는 숨을 쉬기조차 힘들었다.
 


 
▲ 해맑은 표정의 나보타스 아이들.
 

저는 성골롬반외방선교회 교구 지원 사제로 필리핀에 파견돼 마닐라 시내에 있는 말라떼본당에 몸담고 있습니다. 지원 사제들은 주로 남미 지역(칠레나 페루 등)으로 파견되는데, 코피노(한국 남성과 필리핀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에 관심을 갖고 있던 저는 필리핀으로 파견되기를 청했고 이곳으로 올 수 있었습니다.

 본당 파견 전 1년간 어학연수를 받았습니다. 단순히 언어소통 문제를 극복하는 것뿐 아니라 지원 사제로서 역할을 해나가도록 스스로 준비하는 기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어학원 수업이 끝나면 필리핀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틈틈이 마닐라 시내 곳곳을 돌아다니며 제 나름대로 필리핀에서 빨리 적응하려고 노력하며 지냈습니다.

 처음 방문한 곳은 `스모킹 마운틴`이라 불리는 나보타스였습니다. 우연히 나보타스 지역에 거주하면서 선교사로 활동하시는 프랑스 수녀님들을 골롬반 본부에서 만나게 돼 생각보다 빨리 그곳을 방문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필리핀으로 오기 전 도시 빈민의 심각성에 관해서 간간히 주변 분들로부터 들었던 터라 필리핀에 가면 그곳을 먼저 가보리라 염두에 두고는 있었습니다.

 1970년대 필리핀 비사야 섬에서 정부군과 NPA(신인민군)의 분쟁이 격화되면서 대규모 국내 난민이 발생했습니다. 필리핀 정부에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난민들을 비사야 섬에서 루손 섬으로 이주시켜 마닐라 인근에 정착시켰습니다. 그렇게 형성된 곳이 나보타스 빈민 지역입니다. 지금 나보타스는 마닐라에서 파야타스와 함께 `스모킹 마운틴`이라는 별칭이 붙어 있습니다. 이 두 지역이 마닐라에서 가장 열악한 도시 빈민 지역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처음 나보타스 방문

 수녀님께서 찾아오는 길을 친절히 적어주시고 설명해 주셨음에도 말도 서툴고 마닐라 시내가 낯설었던 터라 혼자 찾아 가기는 많이 힘들었습니다. 지프니(지프를 개조한 필리핀 대중교통수단)를 타고, 전철을 갈아타고 다시 다른 지프니를 타고 마지막으로 트라이씨클(오토바이를 개조한 교통수단)로 갈아타는 복잡한 단계를 거쳐야 했습니다. 초행길이었지만 새로운 사람들을 만난다는 호기심이 힘든 과정을 상쇄시켰습니다.

 목적지에 다다랐을 즈음 교통경찰에게 주소를 내밀며 어떻게 가야 하는지 물었습니다. 경찰은 뭐라 설명하더니 길이 복잡했던지 손가락으로 본인 오토바이를 가리키며 타라고 했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올라탔습니다.

 경찰은 제게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외국인 혼자 왜 거길 가느냐? 거기가 어딘지 알고 가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제 신분을 소개하고 그 지역에 사는 수녀님들을 만나러 가는 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가는 동안 경찰에게 그곳에 관한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제가 가는 곳이 치안 사각지대라고 했습니다. 경찰은 조심하라고 신신당부하며 목적지까지 데려다 줬습니다. 경찰의 도움으로 나보타스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들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치안공백 지역인 나보타스는 신분을 감추고 살아야 하는 많은 범죄자들이 은둔 생활을 하고 있어 매우 위험한 지역이었습니다. 듣기만 했던 그곳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니 마음으로부터 깊은 한숨이 저절로 나왔습니다.

 그렇게 나보타스에 첫발을 내디딘 후 저는 매달 첫 주에 한 번씩 있는 후원회 모임에 참여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방문했습니다. 여러 번 방문하면서 나보타스 곳곳을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동네 주변을 묘사하면 그 지역을 흐르는 강에는 산더미 같은 쓰레기가 둥둥 떠다니고, 간장 빛 강물에 아이들이 뛰어들어 놀고 있습니다. 좁은 골목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집은 빛이 들어오지 않아 어둡고 습하고 청결하지 못합니다. 돌아다니는 내내 악취 때문에 제대로 숨을 쉴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자주 방문하다 보니 악취도 익숙해지더군요. 그러면서 문득 `내가 얼마나 좋은 나라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었던가`를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난 사제로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면서 저 자신의 인간적 한계와 무능함을 마주하게 됐습니다. 이 지역 주민을 위해 하느님의 축복과 은총을 청했습니다.
 
 주민들과 함께 미사 봉헌

 1년여 시간 동안 정기적으로 이 지역을 방문하다 보니 수녀님, 지역 주민들과 무언의 신뢰관계가 형성됐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수녀님께서 타갈로그어(필리핀어) 주일미사를 부탁하셨습니다. 타갈로그어 공부는 시작 단계였던 저는 수녀님 부탁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정중히 거절하려는 순간 수녀님은 "부족한 그 모습 그대로를 사람들은 좋아할 것"이라며 저에게 용기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덜컥 승낙을 하고 말았습니다.

 나름 최선을 다해 준비했습니다. 약속된 날 미사를 봉헌한 곳은 성당이 아닌 길거리였습니다. 노상에 제대를 차렸습니다. 성가 반주도 없었습니다. 미사에 참례한 신자들의 행색은 형편없었습니다. 젊은 아낙네는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있었고, 다투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동네 아이들은 울어댔습니다. 어수선함 그 자체였습니다.

 하지만 그 어느 미사보다도 뜻깊었습니다. 주민들이 말보다 제가 전하는 마음과 함께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는 미사였습니다. 제가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신자들은 웃고 박수쳐 주며 용기를 줬습니다.

 신자들과 마음을 모아 미사를 봉헌하면서 든 또 하나의 생각은 미사를 드리는 내내 예수님이 함께하셨다는 것입니다. 미사는 그 어떤 장식, 화려한 선율보다도 아름다웠습니다. 하느



가톨릭평화신문  2013-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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