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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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지에서 온 편지] 필리핀(6,끝) 한류의 꿈을 좇는 한 청년 이야기- 박찬인 신부(대전교구)

이주 노동자들 따뜻하게 감싸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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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드라마와 쇼 프로그램의 영향으로 한국은 필리핀 사람들에게 세련되고 화려한 나라로 인식되고 있다.
사진은 필리핀 청년들과 함께하고 있는 필자.
 
 
   필리핀 사람들의 한국 사랑은 남다른 것 같습니다. 양국 간 깊은 인연은 6ㆍ25 사변 때 필리핀이 UN군 일원으로 전쟁에 참여하면서 혈맹국으로 시작됩니다. 역사적으로도 필리핀은 한국과 같은 식민지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6ㆍ25 사변 후 현대사에서도 비슷한 독재 시절을 겪었습니다.

 한때 필리핀은 일본과 함께 아시아의 두 마리 용으로 군림하며 한국을 원조하던 나라이기도 합니다. 그랬던 필리핀이 이제는 역으로 한국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필리핀에도 최근 한류가 소개되면서 필리핀 국민들에게 한국 이미지는 세련되고 화려하게 각인됐습니다. 이를 동경하는 필리핀 젊은이들 사이에서 불법이든 합법적이든 막연한 희망에 부풀어 한국으로 가 취직을 하려는 경향이 많이 있습니다.
 
 곳곳에 퍼지는 `코리언 드림`

 본당 주변에는 한국에서 이주노동자로 일하다 온 필리핀인들이 많습니다. 한국에 다녀온 이들이 코리언 드림의 전도사로서 한몫을 하고 있습니다.

1970~80년대 한국이 경제적으로 궁핍했을 때 한국인들이 외국에 나가 노동자나 군인으로 일하며 달러를 벌어 와야만 했던 아픈 과거를 떠올리면 이를 쉽게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주노동 경험이 있는 현지인들은 주변 사람들에게 "한국에서 합법이든 불법이든 2년 정도 체류하면서 열심히 돈을 모으면 잘 살 수 있다"고 말하곤 합니다. 우리나라 입장에서 생각하면 그리 넉넉한 돈은 아닙니다.

 그러나 필리핀 중산층 평균 월급이 약 1만 페소에서 1만 3000페소(25~30만원)인 점을 감안하면 2년 동안 일하면 고향으로 돌아와 집 한 채 짓고 나름 편안하게 살 수 있는 기반은 만들어집니다. 그래서 그런 모험을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힘들게 모아서 고국으로 보내는 돈이 제대로 쓰이는 것만은 아닙니다. 한국공단에서 일하는 한 남매 가족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 남매의 부모는 한국에 있는 자식들 속사정은 모른 채 자식 자랑할 요량으로 종종 잔치를 열거나 형편에 맞지 않는 값비싼 물품들을 구입하며 자식들이 어렵게 벌어서 보내온 돈을 탕진하고 있었습니다. 이 사연을 접하면서 훗날 자식들이 필리핀에 돌아와 고생해서 모은 돈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면 그들이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 싶어 저 또한 가슴이 답답했습니다.
 
 한 여자 청년의 코리언 드림

 같은 본당에 있었던 한 여자 청년회장의 사연을 잠시 소개할까 합니다. 신앙이 독실한 가정에서 자란 그녀는 가정 형편상 학업을 계속 이어갈 수 없어 졸업 후 바로 백화점 매장 직원으로 일하게 됐습니다.

 사회에 첫발을 디딘 후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조금씩 알게 된 그녀는 직장을 다니며 남다른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어릴 적부터 한국 드라마나 쇼 프로그램을 보며 한국어를 익히고 한국에서 유행하는 패션 스타일이나 춤들을 따라하며 막연히 한국을 동경했던 그녀는 본인만의 꿈(한국 진출)을 이루고 싶어 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한국에서 일하다가 돌아온 필리핀 이주노동자들 이야기를 접할 기회가 많았는데 그런 이야기를 남의 이야기가 아닌 자신의 이야기로 만들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빈민촌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현실의 벽은 그리 녹록하지 않습니다. 빈민지역 주민들이 정부로부터 이주노동자 허가를 받기는 너무 복잡하고 까다로워서 주로 이들은 브로커(중개인)를 이용하는데 이 또한 경비가 만만치 않습니다.

 그래도 그녀는 현실 앞에 좌절하기보다는 그 꿈을 이루고자 아끼고 노력하며 하루 하루를 지냈습니다. 그녀가 백화점에서 한 달 동안 버는 돈은 5000페소(우리 돈 15만 원) 정도였습니다. 브로커에게 건낼 300만 원을 마련하기 위해 3년 동안 꼬박 번 돈을 모았고, 꿈을 이루는 한 단계를 넘어섰습니다.

 한발 더 나아가 그녀가 직면한 또 다른 문제는 한국에 아무런 연고 없이 브로커의 소개로만 혈혈단신 안산에 있는 공단으로 간다는 사실입니다. 정작 본인은 거기서 무슨 일을 하는지, 또 월급은 얼마나 받고 생활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제대로 모르고 있었습니다. 많은 위험 부담을 안고 있음에도 한국으로 간다는 사실 자체에 들떠 마냥 좋아하고만 있는 모습을 보고 한숨이 절로 나왔습니다.

 올해 초 한국으로 들어갈 그녀를 보면서 마음으로는 그 누구보다 말리고 싶었고, 한편으로는 제가 알고 있는 기업체에 부탁해서 도움을 주고도 싶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친구들이 한둘이 아니기에 그때마다 제가 도움을 주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인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동안 이렇게 도움이 필요한 이 사람들에게 사제로서 제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물으며 고민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지면을 통해 독자 여러분에게 이 말씀을 꼭 드리고 싶습니다. 한국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본국에서는 한 가정의 소중한 아들, 딸이며 가족을 위해 고된 노동과 힘든 상황을 꿋꿋이 이겨내고 있음을 말입니다. 혹시 이주노동자를 만날 기회가 있으시다면 선입견을 버리고 따뜻한 마음으로 그들을 바라봐 주시기 바랍니다. 

후원 시티은행 108-16147-267-01   예금주 박찬인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13-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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