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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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지에서 온 편지] 짐바브웨<하> 박치영 수녀(메리놀 수녀회)

"한국에서 받은 사랑, 노튼 아이들에게 나눠주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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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의 꿈은 직업학교를 설립해 아이들 자립을 돕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도움이 필요하다.
 


 
▲ 노튼청소년센터 아이들은 공부를 할 때보다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수업을 할 때 더 즐거워한다.
사진은 춤을 추고 있는 아이들 모습.
 
 
신문이나 TV에서 비쩍 마르고 슬픈 얼굴을 하고 있는 아프리카 어린이들 모습을 보여줄 때마다 마음이 아픕니다. 노튼의 어린이들은 가난합니다. 배불리 세끼를 먹는 날이 없습니다. 부모님이 안 계신 어린이도 많습니다. 하지만 항상 맑고 밝게 웃고, 순간순간 기뻐하고 늘 감사하며 살고 있습니다. 정말 예쁜 어린이들입니다.

 TV나 신문에서 아프리카의 밝은 모습을 많이 보여줬으면 합니다. 우리 아이들은 의사, 간호사, 군인, 트럭운전사, 변호사 등 큰 꿈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배불리 고기를 먹고, 매일 케이크, 과자, 사탕, 밥을 먹는 게 꿈인 아이도 있습니다.

 노튼청소년센터에 오는 아이들은 공부보다는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연극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출 때는 실수를 하더라도 서로 하겠다고 나서지만 공부를 시작하면 조용해집니다. 꾸벅꾸벅 졸기도 합니다. 그럴 때면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함께 춤을 추고, 박수도 치면서 분위기를 바꿉니다.

 아이들과 같이 생활하면서 아이들 안에 계신 주님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곳에 있으면서 믿음이 더 커지는 느낌입니다. 아이들이 제 인생의 선생님이기도 합니다. 아이들과 함께 지내다 보면 나이도 잊어버리게 됩니다. 가끔은 저도 어린이 같아집니다.

 처음 짐바브웨에 왔을 때 대여섯 살 된 아이가 집안일을 하는 모습을 보고 많이 놀랐습니다. 이곳에서는 아주 어린 아이가 방을 청소하고 엄마의 설거지를 도와주고 마당을 빗자루로 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짐바브웨 부모들은 자녀가 아주 어릴 때부터 집안일을 가르칩니다. 특히 여자 아이는 더 많은 일을 배웁니다. 처음에는 어린 아이가 일하는 모습이 낯설었는데 오래 살다 보니 그 모습이 익숙해졌습니다. 이제는 가끔 한국에 오면 아이들이 일을 전혀 돕지 않고 공주, 왕자처럼 사는 모습이 이해가 안 갈 정도입니다. 저도 아프리카 정서가 익숙해지고 있나 봅니다.
 
 노튼, 새로운 미래를 향해

 지난해 8월 말 엄마가 많이 아프시다는 소식을 듣고 3개월여 동안 한국으로 휴가를 왔습니다. 엄마와 함께 할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엄마를 따뜻하게 돌봐주신 성가복지병원 수녀님들, 가족과 같은 봉사자분들의 헌신과 사랑을 지켜보면서 마음이 치유되는 느낌이었습니다.

 불교신자였던 엄마는 12월 병원에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주님의 자녀가 된 후 기뻐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고 감동을 받았습니다. 원래는 12월 10일에 짐바브웨로 떠나야 했는데, 휴가를 열흘 연장한 보람이 있었습니다.

 사랑스러운 아이들과 선생님들이 있는 짐바브웨로 돌아와 기쁘지만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습니다. 10년 넘는 시간 동안 수많은 어린이들이 생활하고 꿈을 키웠던 센터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2012년 12월, 빌려서 사용하던 초등학교 운동장을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됐고, 센터는 어쩔 수 없이 문을 닫게 됐습니다. 운동장을 더 이상 빌려줄 수 없다는 교장 선생님의 독단적인 결정 때문이었습니다. 노튼 아이들의 꿈터였던 센터가 꿈처럼 사라진 것입니다. 1000명 넘는 어린이들이 무료로 공부할 수 있었던 배움터가 주변 사람들의 욕심으로 한순간에 문을 닫았습니다.

 그러나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이번 일이 노튼청소년센터가 새롭게 태어날 수 있는 전환점이 될 거라 믿었습니다. 한국에 휴가를 오기 전 8개월 동안 노튼시청을 계속해서 방문해 도움을 요청한 끝에 마침내 9900㎡ 넓이 땅을 25년 동안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았습니다.

 새로 임대한 땅은 자연 상태로 방치된 습지대여서 기초공사부터 해야 합니다. 비록 습지대에 있는 땅이지만 괜찮습니다. 우리 어린이들이 배우고, 마음껏 웃을 수 있는 터전이 다시 만들어질 수 있으니까요.

 우선 담장을 만들 생각입니다. 또 수도 시설과 화장실을 설치하고 나무도 심어서 노튼청소년센터를 새롭게 시작하고 싶습니다. 마당만 있으면 센터는 다시 문을 열 수 있습니다.

 길에서 마주치는 가난한 학부모들은 "언제 다시 센터 문을 여느냐?"고 묻습니다. 노튼 아이들 중 30는 극심한 가난 때문에 정규학교 교육을 전혀 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오갈 데 없어진 아이들의 실망한 눈빛을 보면 가슴이 아픕니다.

 노튼 아이들은 가난하지만 슬프지 않습니다. 가난해도 더 나은 미래, 더 나은 세상, 더 나은 삶을 만들기 위해 함께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도 아이들 곁을 지키며 함께 노력할 것입니다.
 
 책임감, 설렘, 두려움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하고, 처음과 같은 마음으로 다시 해야 하기에 책임감이 느껴집니다. 가슴 설레기도 하지만 솔직히 두렵기도 합니다. 저와 노튼 아이들의 꿈을 다시 펼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싶습니다. 앞만 보고 나아가려 합니다. 더욱 더 주님을 믿고, 겸손한 마음으로 아이들, 선생님, 주민들과 조화롭게 살고 싶습니다.

 가끔은 짐바브웨에서의 제 삶이 `주기만 하는 사랑이 아닐까` 하는 철없는 투정을 할 때도 있었습니다. 저는 이곳 사람들에게 주기만 하면서 만족해야 하고, 이곳 사람들은 두 눈을 크게 뜨고 받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에 오면 저는 언제나 도움 받기만을 기다리고 도움



가톨릭평화신문  2014-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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