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호 신부(광주대교구)
전 세계에 900여 명, 제가 살고 있는 남미에 250여 명의 한국인 사제와 수녀, 평신도들이 선교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많은 선교사들은 각자 해외선교를 지원하게 된 동기가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해외선교 동기`에 대해서 먼저 언급하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동기에 따라 삶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또한 큰 힘이 되기 때문입니다. 저의 해외선교 동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풍요로움에 젖은 껍데기를 벗고
5년 동안 보좌신부 생활을 했습니다. 광주대교구에서 꽤 큰 본당이었습니다. 그런데 영성의 부족함 때문인지, 아니면 기도 생활의 부족함 때문인지 시간이 흐를수록 사제품을 받을 때 `첫 마음`의 색깔이 조금씩 옅어져 갔습니다.
점점 편해지는 생활과 조금씩 늘어나는 짐들은 성취감 비슷한 묘한 감정들을 갖게 만들었습니다. 편안함과 풍요로움에 빠져 살아서인지 신자 분들과 점점 편협한 관계를 맺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신자 분들은 내 뜻에 동조하고, 내 요구를 들어주는 사람처럼 느껴졌습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편안함과 풍요로움을 원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편안하고 풍요로운 삶은 많은 것을 잃어버리게 했습니다. 뭔가 채우려고 했지만 남은 것은 껍데기뿐이었습니다. 때론 교만해지는 제 자신을 발견하고 놀라기도 했습니다.
이 사실을 깨달았을 때 이미 제 몸과 마음은 하느님과 멀어져 있었습니다. 해외선교 파견 직전 전남 신안군에 있는 인덕본당 보좌로 발령 받았습니다. 섬마을 공소에서 승격된 본당입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곳에서 제 마음을 되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거동이 불편한데도 미사 참례를 위해 성당에 힘들게 들어오시는 할머니들이 계셨습니다. 주님의 몸을 받아 모시는 할머니들 손은 돌처럼 굳어 있었습니다. 할머니들을 바라보며 `나는 어떤 사제인지` 알고 싶었습니다. 또한 하느님께서 `나`라는 작은 존재에게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신지 묻고 싶었습니다.
편안함과 풍요로움에 젖은 껍데기뿐인 삶! 이를 반성하고 다시금 첫 마음을 회복하고 싶었습니다. 이때 해외선교를 결심했습니다. 편안함과 풍요로움 속에서는 첫 마음을 찾을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불편하고 부족하더라도 그 안에서는 첫 마음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저는 동기가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해외선교지에서 살아가는 데 아주 큰 힘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여기 칠레에 있을 수 있습니다.
2010년 5개월 간 언어연수 과정을 마친 후 곧바로 발령을 받았습니다. 칠레 수도 산티아고 남쪽에 위치한 빈민가로 에스페호(Lo Espejo)라는 곳이었습니다. 대림시기인 12월 18일에 발령을 받았습니다. 스페인어 초보자인 제게는 첫 본당 사목이 쉽지 않았습니다. 저보다 먼저 칠레에서 선교사로 활동하고 계셨던 김종원(대전교구) 신부님이 함께해 주셔서 다행이었습니다.
예수 성탄 대축일을 앞두고 몇몇 가정이 구유를 준비했습니다. 성탄 전까지 구유를 축성하면서 가정 방문을 하고 환자 분들을 위한 병자성사도 집전했습니다. 드디어 칠레에서 처음 맞는 성탄 전야 미사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이렇게 칠레에서 첫 성탄이 지나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 신부님이 공소 성탄 미사 때 체험을 들려주셨습니다. 공소 회장이 김 신부님에게 "신부님, 저희 공소에는 구유를 꾸밀 성상들이 없어서 그림으로 그려서 준비하도록 할게요!"라고 했답니다. 그래서 한 번 준비해보라고 하셨답니다.
▲ 1월이 되면 4~5일 동안 동네 아이들을 위한 축제를 연다. 사랑스러운 아이들과 함께하고 있는 필자. |
▲ 산티아고는 살이 따가울 정도로 뜨겁다. 나무 그늘 아래 지친 표정으로 앉아 있는 아이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