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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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지에서 온 편지] 칠레(1)안락함 벗고 산티아고 빈민가의 뙤약볕 속으로

황성호 신부(광주대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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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에 900여 명, 제가 살고 있는 남미에 250여 명의 한국인 사제와 수녀, 평신도들이 선교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많은 선교사들은 각자 해외선교를 지원하게 된 동기가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해외선교 동기`에 대해서 먼저 언급하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동기에 따라 삶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또한 큰 힘이 되기 때문입니다. 저의 해외선교 동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풍요로움에 젖은 껍데기를 벗고
 5년 동안 보좌신부 생활을 했습니다. 광주대교구에서 꽤 큰 본당이었습니다. 그런데 영성의 부족함 때문인지, 아니면 기도 생활의 부족함 때문인지 시간이 흐를수록 사제품을 받을 때 `첫 마음`의 색깔이 조금씩 옅어져 갔습니다.
 
 점점 편해지는 생활과 조금씩 늘어나는 짐들은 성취감 비슷한 묘한 감정들을 갖게 만들었습니다. 편안함과 풍요로움에 빠져 살아서인지 신자 분들과 점점 편협한 관계를 맺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신자 분들은 내 뜻에 동조하고, 내 요구를 들어주는 사람처럼 느껴졌습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편안함과 풍요로움을 원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편안하고 풍요로운 삶은 많은 것을 잃어버리게 했습니다. 뭔가 채우려고 했지만 남은 것은 껍데기뿐이었습니다. 때론 교만해지는 제 자신을 발견하고 놀라기도 했습니다.
 
 이 사실을 깨달았을 때 이미 제 몸과 마음은 하느님과 멀어져 있었습니다. 해외선교 파견 직전 전남 신안군에 있는 인덕본당 보좌로 발령 받았습니다. 섬마을 공소에서 승격된 본당입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곳에서 제 마음을 되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거동이 불편한데도 미사 참례를 위해 성당에 힘들게 들어오시는 할머니들이 계셨습니다. 주님의 몸을 받아 모시는 할머니들 손은 돌처럼 굳어 있었습니다. 할머니들을 바라보며 `나는 어떤 사제인지` 알고 싶었습니다. 또한 하느님께서 `나`라는 작은 존재에게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신지 묻고 싶었습니다.
 
 편안함과 풍요로움에 젖은 껍데기뿐인 삶! 이를 반성하고 다시금 첫 마음을 회복하고 싶었습니다. 이때 해외선교를 결심했습니다. 편안함과 풍요로움 속에서는 첫 마음을 찾을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불편하고 부족하더라도 그 안에서는 첫 마음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저는 동기가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해외선교지에서 살아가는 데 아주 큰 힘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여기 칠레에 있을 수 있습니다.
 
 2010년 5개월 간 언어연수 과정을 마친 후 곧바로 발령을 받았습니다. 칠레 수도 산티아고 남쪽에 위치한 빈민가로 에스페호(Lo Espejo)라는 곳이었습니다. 대림시기인 12월 18일에 발령을 받았습니다. 스페인어 초보자인 제게는 첫 본당 사목이 쉽지 않았습니다. 저보다 먼저 칠레에서 선교사로 활동하고 계셨던 김종원(대전교구) 신부님이 함께해 주셔서 다행이었습니다.
 
 예수 성탄 대축일을 앞두고 몇몇 가정이 구유를 준비했습니다. 성탄 전까지 구유를 축성하면서 가정 방문을 하고 환자 분들을 위한 병자성사도 집전했습니다. 드디어 칠레에서 처음 맞는 성탄 전야 미사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이렇게 칠레에서 첫 성탄이 지나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 신부님이 공소 성탄 미사 때 체험을 들려주셨습니다. 공소 회장이 김 신부님에게 "신부님, 저희 공소에는 구유를 꾸밀 성상들이 없어서 그림으로 그려서 준비하도록 할게요!"라고 했답니다. 그래서 한 번 준비해보라고 하셨답니다.




 
▲ 1월이 되면 4~5일 동안 동네 아이들을 위한 축제를 연다. 사랑스러운 아이들과 함께하고 있는 필자.
 그런데 공소 미사를 마치고 `내가 조금만 더 신경 썼으면 좋았을 것을…`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드셨다고 합니다. 신자들이 구유를 준비했는데 아기 예수님은 장난감 인형, 성모님과 요셉 성인은 종이에 그린 그림으로 대신했다고 합니다. 초라한 구유 모습을 본 신부님은 미안함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성가정 축일 때 구유 옆 성모님과 요셉 성인의 그림을 보고 저 또한 많이 미안했습니다.
 
 #흔한 사탕도 소중히
 매년 1월이면 `콜로니아 우르바나(Colonia Urbana)`라는 행사를 합니다. 한국교회의 초등부 신앙학교와 같습니다. 본당 청년들이 동네 아이들을 위해 2~3주 전부터 율동을 비롯한 여러 프로그램을 준비합니다. 4박 5일 정도 진행되는데 마지막 날은 무대를 설치해 아이들과 신나게 축제를 즐기고 마무리합니다. 부족하나마 저도 함께했습니다.
 
 아이들의 간식을 준비하는 날이었습니다. 아이들에게 나눠줄 작은 주머니에 사탕을 다섯 개씩 담고 있던 청년들이 다시 사탕을 꺼내는 것이었습니다.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파드레(신부님), 사탕이 부족해요"라고 했습니다. 그럴 만도 했습니다. 청년들이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동전을 기부 받아 프로그램을 운영하다 보니 빠듯할 수밖에요.
 
 더군다나 축제에 동네 아이 600명이 참가했습니다. 1월의 뜨거운 태양 아래서 음료수라고는 과일 맛 나는 가루를 수돗물에 섞은 게 전부였습니다. 한국에서 보좌로 사목할 때 어린이 미사 후 나눠준 간식을 집에 돌아가면서 버렸던 아이들이 생각났습니다.
 
 고마움을 잊고 당연하다고 여길 때 조금씩 소중함을 잃어버리는 것 같습니다. 청년들을 데리고 과자 도매상가에 갔습니다. 그리고 600명의 아이들이 충분히 나눠먹을 수 있는 양의 사탕을 샀습니다. 좀 더 질이 좋은 가루 음료도요.


 
▲ 산티아고는 살이 따가울 정도로 뜨겁다. 나무 그늘 아래 지친 표정으로 앉아 있는 아이들.
 산티아고는 정말 뜨겁습니다. 저는 서너 번은 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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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4-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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