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3일
교구/주교회의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정지용 신부의 남수단에서 온 편지 (56) 1000일째 되던 날

반가운 비 소식과 가슴 철렁한 소식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오늘은 이승환의 ‘천일동안’이라는 노래가 입안에서 맴도는 날입니다. 왜냐하면 오늘(1월 29일)이 남수단에 온지 1000일째 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처음 남수단으로 한 달간 실습을 하러 들어왔을 때, 모기와 빈대 등에 물려 팔과 다리에 수많은 자국이 남은 것을 보며 ‘과연 이곳에 들어와 살 수 있을까?’를 고민했고, 무더운 건기를 처음 경험했던 2012년에는 또 다시 찾아올 건기를 견뎌낼 수 있을지 고민했습니다. 그런데 벌레들의 공격에 맞서고 무더위와 싸우다 보니 어느새 1000일이란 시간이 지났습니다.

남수단에 들어 온지 천 번째 되는 오늘, 마치 이날을 기념이라도 하는 듯 날씨가 조금 수상했습니다. 지난 11월 이후 건기로 들어서면서 하늘에 구름이라고는 거의 볼 수가 없었는데 2개월 만에 하늘이 구름으로 뒤덮이고 있었습니다. 비가 오려는 가 봅니다.

오후 세 시쯤 되자 거센 바람이 불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조금 더 시간이 흐르자 먼 하늘에 낙뢰가 내리칩니다. 하지만 아직 빗방울은 떨어지지 않습니다. 혹시나 이대로 비가 내리지 않고 구름이 지나가 버릴까 싶어 주변에 있던 사람들에게 묻자 그들 역시 여기는 비가 안 올 수도 있겠다고 합니다. 2개월 만에 오려는 비에 잔뜩 부풀었던 기대가 사그라지려고 할 즈음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우와! 비다!’ 신이 나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한창 성당 마당에서 청년들과 작업을 하고 있던 중에 비가 오기 시작했고 오랜만에 만나는 비를 온몸으로 맞아주었습니다.

반가운 비를 맞으며 즐겁게 작업을 하고 있는데, 길을 고치러 외부로 나갔던 차량이 예정보다 일찍 돌아오는 것이었습니다. 어찌된 일인지 물어보니 비가 오고 낙뢰가 내리쳐 철수하던 중에 굴삭기로 작업하던 표 신부로부터 사고가 났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합니다. 작업 중에 비 때문인지 굴삭기가 미끄러지며 길옆에 파놓은 웅덩이로 빠졌고 다행히 표 신부가 다치지는 않았지만 굴삭기를 꺼내기 위해 돌을 가져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잠시, 표 신부가 이날의 상황을 동료들에게 적어 보낸 글을 전해봅니다.

“굴삭기 한쪽 바퀴가 흙 치환을 위해 파놓은 웅덩이에 빠지면서 굴삭기 전체가 미끄러지며 덜커덩! 그 말로만 듣던 굴삭기 전복 사고가 드디어 내게도 일어나는가 하는 생각과 동시에 지난 과거가 모두 파노라마로 이어지며, 본능적으로 굴삭기 무쇠팔을 돌려 넘어가는 쪽으로 찍었다. 식은땀이 주르륵 흐르고, 입에서는 성모송이 외어지고 있고…. 1미터가 채 안 되는 웅덩이였지만, 갑작스레 내린 비로 지표면이 미끌거리는 것을 그 무거운 굴삭기가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도 천만다행으로 하느님이 보우하사 전복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다.”

트럭에 실어간 돌을 바닥에 깔고 굴삭기가 그 위를 밟아 웅덩이에서 무사히 빠져 나올 수 있었습니다.

1000일째 되던 날, 신기하게도 비가 내렸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사건도 있었습니다. 아마도 이날을 특별히 기억하라는 뜻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또한 긴장을 놓지 말고 첫 마음으로 돌아가라는 의미도 담겨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 폭우로 인해 길옆 웅덩이에 빠진 굴삭기를 꺼내는 모습.
 
※ 남수단과 잠비아에서 활동하는 수원교구 선교사제들을 위해 기도와 후원을 부탁드립니다.

※ 후원계좌 03227-12-004926 신협 (예금주 천주교 수원교구)

※ 수원교구 해외선교후원회

http://cafe.daum.net/casuwonsudan

※ 선교사제들과 함께할 다음과 같은 봉사자를 찾습니다.

- 사회복지, 의료분야, 영어교육, 태권도교육 등

※ 문의 031-548-0581(교구 복음화국 해외선교부)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4-02-14

관련뉴스

말씀사탕2024. 5. 3

시편 19장 10절
주님을 경외함은 순수하니 영원히 이어지고 주님의 법규들은 진실이니 모두가 의롭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