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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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지에서 온 편지] 칠레(2) ‘선교사, 모든 것을 받아 들이는 하느님 사람’

황성호 신부(광주대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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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좋아하는 스페인어 문장이 있습니다.

 "Recibir es al mismo tiempo Renunciar". "받아들인다는 것은 동시에 버린 다는 것이다"는 뜻으로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문장입니다. 사랑하는 사람, 가족, 친구 등 인간 관계를 위해서는 때론 자신의 것을 포기하거나 버려야 합니다. 우리 가톨릭 신앙에서도 마찬가지죠. 특히 해외 선교사들은 `받아들인다는 것`에 대해서 자주 묵상해야 합니다.

 #다르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 
 칠레 생활을 다시 새롭게 시작해야 했습니다. 산티아고의 빈민가에서 사목하던 중에 쓰러진 저는 칠레 시골 마을로 옮겨야 했기 때문입니다. 102년의 역사를 지닌 본당이 있고 12개의 공소가 있었는데, 공소까지의 거리는 가깝게는 10km, 멀게는 20~30km가 됐습니다. 그리고 이곳의 특이한 점은 바로 날씨인데, 1년 중에 비가 10개월간 오는 지역입니다. 칠레의 빈민가, 시골 마을 신자들. 모두가 소외되고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 칠레 시골 마을을 방문에 동료 선교 사제들과 미사를 봉헌하는 필자. 사진제공=황성호 신부
저는 한국인, 현지인들은 칠레인이다 보니 당연히 문화, 관습, 음식, 특히 언어가 다릅니다. 많은 해외 선교사들이 다르다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고 힘들어 합니다. 스트레스의 영향일까요. 내적 깊은 곳에 감춰두었던 것, 타인에게는 내보이고 싶지 않았던 것들이 삶에서 불쑥 튀어나올 때가 많습니다. 함께 살아가는 동료 선교사에게 보이기도 하고, 현지 원주민들에게 행동으로 드러내기도 합니다.
 
 이럴 땐, 참 난감하고 창피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또한 선교사 자신에게는 이 순간이 아주 중요합니다. 자기 자신을 제대로 볼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 여기서 참 많은 것들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선교지의 상황이 다를 뿐인데, 선교사들은 틀리다는 시각으로 받아들여 결국 많은 어려움에 놓이기도 합니다.
 
 가장 큰 문제는 시각의 고착화죠. 다를 뿐인데, 성직자나 수도자라는 존재의 우월의식(특히 한국 사람들이)을 가져 `너는 틀려`라는 의식이 작용해 버린 것이죠. 그리고 그 마음에서 이렇게 소리치겠죠. `도대체 이 사람들이 뭘 할 수 있겠어?`라는 부정적인 시각, 그러면서 가장 중요한 선교사와 현지인들과의 관계가 깨지는 것을 자주 볼 수 있었습니다.
 
 십자가를 지려면 자기 자신을 버려야 한다는 말씀이 떠오릅니다. "받아들인다는 것은 동시에 버린다는 것이다." 우리가 평생을 살면서 배웠고 익숙했던 모든 것을 버려야만 토착화가 이뤄지는 것이 아닐까요. 20년 넘게 칠레에서 선교하신 신부님이 그러시더군요. "선교는 내가 알고 있는 하느님과 그리고 여기 원주민들이 알고 있는 하느님의 만남이요 대화다." 50년 넘게 칠레 시골 마을에서 선교사로 사신 폴란드 신부님께서도 그러십니다. "문제는 주변과 상황이 아니야, 또 원주민 신자들도 문제가 되지 않아! 문제는 항상 `나`로부터 시작되더라고. 그래서 선교는 받아들이는 것이 아주 중요해!"
 
 그렇습니다. 선교는 어떤 결핍이라는 시각에서 무엇을 해주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고 대화하고 그들의 삶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결국, 받아들이는 것이죠.
 
 칠레는 여름(1~2월) 도시 본당의 신자들이 시골이나 산골 마을로 미션 활동을 떠납니다. 저도 약 2주 동안 칠레 신자들과 산골 마을 미션에 동행했습니다. 여름방학이라 비어 있는 분교에 대충 잠자리를 마련하고, 산골에서 외롭게 사는 가정을 방문했습니다. 이 미션 활동은 매우 중요합니다. 사제 수가 부족하거나 본당 또는 공소를 지을 수 없는 어려운 곳에서 활동하기 때문에 신자들의 재교육을 위한 좋은 기회입니다. 두세 명씩 짝을 지어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각 가정을 방문하고, 삶의 이야기를 나누고, 교리를 가르치며, 아이들에게 묵주를 주어 기도하는 법을 가르치기도 합니다.
 
 칠레 신자 부부와 함께 5~6km를 걸어 겨우 한 집을 발견했습니다. 그 집은 여느 시골 마을처럼 평온하고 아름다운 노부부가 지내는 곳이었습니다. 개신교 신자들이었지만, 방문자가 흔하지 않은 곳이어서 그런지 잘 반겨주었습니다.



▲ 선교사는 하느님의 기다림을 사람들에게 일깨워 주는 하느님의 사람이다. 사진은 선교사를 만나 하느님 존재를 느끼고 그분을 향한 새로운 삶을 시작한 칠레 할아버지와 부인. 사진제공=황성호 신부
 한참을 이야기하던 중에 할아버지께서 "나는 예전에 알코올 중독자였어!"하시며 당신의 과거를 이야기해주셨습니다. 40여 년 전, 젊었을 때 그 혈기만 믿고 방탕한 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그때는 집에 불화가 끊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부인과 싸우고, 아이들에게 함부로 대하는 등. 그런데 자기 자신의 내면 깊은 곳에서는 이래서는 안 된다고 계속 소리쳤다고 합니다. 내적인 갈증이 있었던 거죠.
 
 그러나 그의 생활은 쉽게 변화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에 이 산골 마을에 선교사 한 명이 찾아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할아버지 집도 방문해주었고요. 할아버지는 선교사의 방문에 그리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선교사가 떠난 후, 가슴이 벅찰 정도로 뜨거웠다고 합니다. 그 선교사가 남기고 간 말이 계속 할아버지의 마음을 울렸다고 그러네요. 선교사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언제나 당신을 기다리십니다. 당신이 돌아올 때까지…."
 
 이 말씀을 하시는 할아버지의 눈은 젊었을 때처럼 초롱초롱했습니다. "아직도 그 말씀을 들었을 때의 감동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어." 선교사의 방문 말씀의 선포, 그 후에 할아버지는 자상한 아버지와 남편으로 변했고 지금까지 그 말씀의 힘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매일 말씀을 읽고 듣습니다. 그런데 왜 그 말씀에 힘이 없는 것일까요? 말씀을 듣는 우리들의 마음과 삶에서 기쁨과 변화의 물결이 흐르지 않는 것일까요?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14-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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