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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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지에서 온 편지] 칠레(3)선교사에게 필요한 것은 조바심 아닌 진실한 기다림

황성호 신부(광주대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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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아메리카 지도에서 노란색 지역이 칠레, 붉은 점으로 표시된 곳이 필자가 선교 중인 리아츄엘로 지역.

 제가 활동하는 본당은 시냇물이라는 의미를 지닌 `리아츄엘로`(Riachuelo)라는 곳에 있습니다. 칠레 남쪽 오소르노 교구에 소속된 본당으로 12개의 공소가 있죠. 매월 두 번째 주 토요일에는 공소 회장님들을 모시고 모임을 합니다. 모여서 간단한 아침 식사를 하고, 공소 행사에 대해 회의를 한 후 미사를 봉헌합니다. 점심을 먹고서야 모임은 끝납니다. 모시고 와야 하고, 또 모셔다 드려야 합니다.

 


▲ 2월 2일 주님 봉헌 축일 미사 전, 모든 신자가 성가대와 함께 성가를 부르면서 성모님을 모시고 마을 주변을 행진하는 모습.
 리아츄엘로 본당은 매년 두 번의 큰 축제가 있습니다. 2월 2일 주님 봉헌 축일에 교구 주교님께서 방문하셔서 신자들과 함께 미사를 봉헌하십니다. 미사 전에는 전 신자들이 성가대와 함께 성가를 부르면서 성모님을 모시고 마을 주변을 행진합니다.
 
 두 번째는 본당 주보 성인인 성모님의 부모님 성 요아킴과 안나를 기리는 축제로, 축일인 7월 26일에 가까운 주일에 주교님을 모시고 미사를 합니다. 본당의 큰 축제들이기에 행사 준비를 위해서 많은 회의를 합니다. 그런데 회의 중에 `나는 진정한 선교사인가`하는 질문을 제 자신에게 던진 적이 있습니다.
 
 본당 축제일에는 전통적으로 세 대의 미사를 해왔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 생각해 보니, 미사 한 대로 줄여서 그 미사에 집중하는 것이 좋을 듯싶어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제 의견에 공소 회장님들 의견은 분분했습니다. 전통적으로 해야 한다는 쪽과 현재 상황에 맞게 바꿔야 한다는 쪽으로 나누어졌습니다. 기존 방식을 지켜야 한다는 주장이 강했습니다.
 
 신자들끼리 대화로 의견이 일치되기를 바랐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결국, 제 의견이 궁금해졌나 봅니다. 말 없이 저를 쳐다보는 것을 보니 말입니다. 잠깐의 시간을 두고 제가 말을 꺼냈습니다.
 
 "나는 칠레 사람도 아니고, 더욱이 102년의 역사를 지닌 이 본당에 온 지도 얼마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무엇을 바꾸거나 새롭게 무엇인가를 한다는 것이 때로는 여러분들에게 강압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전통을 바꾼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결국 대립되는 의견들의 중립인 축제날에 미사를 두 대를 하기로 했습니다. 회의가 끝난 후, 사제관에 들어와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한국에서 보았던 선교사 신부님들은 우리와 평생을 함께 사셨고, 한국에 묻히신 분들입니다. `나`라는 존재의 의미를 찾겠다고 잠깐 와 있는 `나`를 보면서, `나는 진정한 선교사인가`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일정 기간이 지난 후에 이들을 두고 한국으로 다시 돌아올 텐데….
 
 조바심은 버리고 기다리는 삶
 성공과 실패의 시각으로 바라볼 수 없는 사업이 바로 하느님 사업입니다. 해외 선교도 마찬가지입니다. 고귀하고 아름다운 `선교의 마음`이지만 현장에서 수시로 다가오는 어려움에 고귀함이 짓밟히기도 하고 아름다운 마음이 흐트러지기도 합니다.
 
 신앙인 모두가 그렇지만, 특히 선교사들에게 있어서 매일의 기도와 묵상, 주님 현존의 체험인 성체 앞 묵상이 아주 중요합니다. 내외적으로 행복과 어려움의 상태에서 잠시 쉼과도 같은 기도와 묵상은 선교사를 더욱 선교사답게 만들어 줍니다.
 
 분주한 하루의 삶 이후 모든 것을 하느님께 봉헌하면서 선교사의 삶에 부합하는 것이 무엇인지 식별할 수 있고, 똑같이 반복되는 하루가 아닌 내일이라는 새로운 하루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조바심이 우리의 마음속에 항상 있습니다.
 
 조바심은 자신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하고, 타인과의 관계성도 깨버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기다림`입니다. 진실한 기다림 이후에 만남과 관계가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거의 1년 반의 기다림! 대전교구 김종원 비오 신부님과 칠레 시골본당인 리아츄엘로(Riachuelo)에서 1년 반을 기다렸습니다. 기본 교리가 부족한 신자들에게 재교육했고, 본당 공소 아이들의 세례와 첫영성체, 공소 옆 분교 학생들의 교리교육과 첫영성체 등을 준비해 주었습니다.



▲ 종이로 만든 큰 바람개비를 든 칠레 아이들.
 본당과 공소의 거리가 꽤 됐지만, 한 달에 한 번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서 분주하게 움직였습니다. 이 모든 것이 신자들의 선익과 혜택을 받지 못하는 현실에 처한 아이들을 위해서였습니다. 주어진 부분에 열정적으로, 스스로에게 약속했던 것들에 대해 성실했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신자들이 조금씩 조금씩 다가오는 것입니다. 항상 안부를 묻지만, 더 친근감 있게 자신들의 수확물(채소, 과일, 벌꿀 등)을 우리에게도 나눠주기 시작했습니다. `이제야 우리를 받아들이는 것일까`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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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4-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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