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숙 수녀(영원한 도움의 성모수도회)
조용하던 깐가리 마을이 요즘 시끌벅적하다. 수녀원 옆에 있는 땅에 아이들과 공부방을 짓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 땅은 가시나무들이 엉켜있는 돌밭이었다.
어렵사리 길도 아닌 길을 열어 도착한 불도저가 힘차게 터를 닦았다. 요즘은 모래와 돌, 시멘트 등 건축자재를 실어나르는 트럭들이 수녀원 언덕을 숨가쁘게 오르내리고 있다.
뜨거운 태양 아래서 일하는 아저씨들의 흥겨운 휘파람소리, 힘찬 망치질소리, 트럭들이 쏟아내는 자갈소리가 어우러지는 하루하루를 보내다보니 우리 얼굴도 아저씨들 얼굴 못지않게 검게 그을었다. 그래도 깐가리 아이들을 위한 집이 하루하루 꼴을 갖춰가고 있어 마음은 주님께 대한 감사와 기쁨으로 가득 차 온다. 진작에 했어야 할 우리의 일을 이제라도 하고 있어서다.
▲ 어린이 공부방에서 열심히 글공부를 하고 있는 개구쟁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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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이 수녀들을 대환영한 이유는
오래 전부터 오지 선교지를 찾던 우리가 이 마을에 처음 도착한 2004년 어느 날. 마을 사람들은 새벽 6시에 긴급회의를 갖고 우리가 마을에 정착하는 것을 만장일치로 찬성했다. 개신교 신자인 안토니오 이장님을 비롯한 참석자 전원이 우리의 깐가리 진출을 환영한 이유는 수녀들이 오면 이곳 아이들 장래가 좀 더 나아지리라는 믿음과 희망에서였다.
선교활동을 하면서 깐가리 부모들이 왜 이런 염원을 가져야만 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그 옛날 우리네 부모들이 그랬듯이, "우리는 못 배워서 고생하며 살지만, 자식들은 많이 배워서 훌륭한 사람이 돼야 한다"는 바람이 컸다. 그러나 이 순수한 염원을 이루기에는 현실이 너무 냉혹했다. 부모들은 문맹인데다 농사일에 지쳐서 아이들을 제대로 돌 볼 수가 없다. 교사들 수준도 읍내 학교보다 훨씬 낮아 초등학교 3, 4학년이 돼도 덧셈 뺄셈은 물론 글도 못 읽는 아이들이 많다.
아이들은 오후 1시에 학교 수업이 끝나고 집에 돌아가면 책가방을 던져놓고 밭으로 달려가 부모들 일손을 돕거나, 소ㆍ돼지ㆍ꾸이(기니아픽) 등 가축들을 먹이기 위해 알파파(콩과 작물)를 베야한다. 집에 책상과 책장을 갖춰놓고 공부하는 학생은 한 두명 있을까말까, 대개는 땅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려 숙제를 하거나 공부를 한다. 의식이 있는 부모들은 교육 환경이 좀 더 나은 읍내 학교로 자식들을 보내지만 그 대신 교통비와 많은 교육비를 부담해야 한다.
우리는 지난해 9월 좀 더 나은 교육여건을 만들어주기 위해 어린이 공부방을 열었다. 우선 유치부부터 초등학교 3학년까지만 접수를 받아 수녀원 입구에 있는 작은 객실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몇 평 안 되는 공간에서 아이들 30여 명이 공부를 하다 보니 학습지도에 무리가 있어 저학년반과 고학년반으로 나눠 글쓰기와 산수 등을 도와주었다.
공부방은 부모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다. 초등학교 고학년과 중학생을 둔 부모들도 자기네 자식들을 받아주기를 원했다. 그러나 수녀원 객실이 좁아 그 요구에 응할 수 없었다. 그래서 지금 청소년 공부방을 짓고 있는 중이다.
▲ 청소년들과 둘러앉아 서로의 꿈과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다.
무한한 가능성을 갖고 있는 예쁜 소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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