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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중에 공소 설립하고 신앙생활 지속

[공소(公所)] 36. 청주교구 금왕본당 쌍봉공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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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교구 금왕본당 쌍봉공소는 6ㆍ25전쟁이 한창인 1951년 10월에 설립됐다. 2008년에 개축한 쌍봉공소 전경.


 
청주교구 금왕본당 쌍봉공소는 충북 음성군 금왕읍 금일로 371번길 58-4에 자리하고 있다.

금왕읍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충주군 금목면(金目面)과 법왕면(法旺面)이 합쳐져 금목면의 ‘금(金)’, 법왕면의 ‘왕(旺)’자를 따서 ‘금왕’이 됐다. 금왕읍 가운데로 소속리산과 우등산 마날봉, 팔성산으로 이어지는 산맥이 뻗어있다. 그래서 조선 왕조 시기 박해를 피해 가톨릭 교우들이 음성군 금왕읍 일대로 숨어들어 교우촌을 이루고 살았다.
 

이국승 바오로 복자


신유박해 순교자 이국승 바오로 복자 배출

금왕읍 출신의 대표적인 순교자가 바로 이국승(바오로) 복자다. 충주 높은베리, 곧 금왕읍 내곡리 높은볼 출신인 이국승은 1790년께 경기도 양근 권일신(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집에서 교리를 배운 다음 가톨릭에 입교했다. 그는 1795년 을묘박해 때 체포됐다가 석방된 후 훈장 생활을 하면서 전교했다. 그러면서 그는 최창현(요한), 정약종(아우구스티노) 등 교회 지도자들과 교류하고, 주문모 신부에게 성사도 받았다. 1801년 신유박해 때 곧바로 체포돼 29살 나이로 공주에서 순교했다.

이국승은 순교 직전 “지난 10년 동안 천주교 신앙에 깊이 빠져, 이미 고질병같이 되었으니, 비록 형벌을 받아 죽는다고 할지라도 신앙을 지키는 마음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일찍이 충주에서 체포됐을 때는 혹독한 형벌을 이기지 못해서 ‘마음을 바꾸겠다’는 뜻으로 말하고 석방됐지만, 이는 저의 본마음이 아니었습니다”라고 마지막 진술을 했다. 또 1866년 병인박해 순교자 충주 계마대(현 음성군 맹동면 봉현리) 교우촌 민윤명(프란치스코) 회장은 금왕의 순교자로 알려져 있다.

금왕본당의 옛 이름은 ‘무극본당’이다. 금왕읍 무극리(無極里)는 이 지역에 금이 많이 매장돼 있어 나침판 자침이 극(남극과 북극)을 나타내지 못하므로 극이 없다 해서 마을 이름을 무극이라 했다고 한다. 무극본당의 전신인 ‘무기공소’는 풍수원본당 초대 주임 르메르 신부에 의해 1888~1889년께 설립됐다. 설립 당시 교우 수가 84명이나 될 만큼 규모가 꽤 큰 공소였다. 당시 부엉골본당을 사목했던 마르탱 신부는 무기(무극)공소를 우수한 공소이며 교우들이 교리를 매우 잘 알고 있고 자녀 교육도 아주 잘한다고 평가했다.

1893년 12월 4일부터 18일까지 보름간 충북 지역을 사목 방문한 제8대 조선대목구장 뮈텔 주교는 “무기 옹기 마을의 교우들도 이곳(숭선공소)으로 와서 성사를 받았는데, 그 고해성사자가 40명이다. 이 옹기 마을은 여기에서 20리(8㎞) 떨어진 곳에 자리하고 있다”고 그의 일기에 적었다.(1893년 12월 15일 자)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 마르탱 신부는 금왕의 교우들이 교리에 밝고 자녀 교육도 아주 잘한다고 평가했다. 쌍봉공소 내부.


1951년 장호원본당 강거리공소로 첫발

금왕읍 북서부에 자리한 쌍봉리는 마을에 봉우리가 2개인 산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마을은 낮은 산들로 둘러싸여 있다. 쌍봉공소의 옛 이름은 ‘강거리공소’였다. 강거리는 마을 중심에 자리한 ‘크고 빛나는 거리’라는 뜻이다. 강거리를 중심으로 중터말과 북당골마을이 동네를 이루고 있다. 강거리 마을은 구씨와 송씨 집안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1941년 쌍봉초등학교가 개교할 만큼 금왕에서 꽤 큰 마을이었다.

해방 후 1947년 신평리 황골 출신 이 마리아가 쌍봉리에 복음을 전파했다. 이후 6ㆍ25 전쟁이 한창일 때인 1950년 10월 쌍봉리 주민들이 세례를 받고 신앙생활을 했다. 그리고 1951년 10월 장호원본당(현 감곡본당) 관할 강거리공소로 설립돼 초대 이종옥(베드로) 공소 회장 집에서 주일을 지켰다. 6ㆍ25 전쟁 기간 동안 쌍봉공소를 설립하고 신앙생활을 지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 충북 지역의 본당들이 다행히 전쟁 피해를 크게 입지 않았기 때문이다.

1953년 8월 8일 충청북도 감목대리구 설정 이후 이 지역은 메리놀외방전교회가 사목을 담당했다. 메리놀외방전교회는 많은 선교사를 파견해 본당을 신설하고 사회복지사업과 의료 사업을 전개해 큰 전교 성과를 이룬다.

쌍봉공소 제대. 제대 뒷벽을 십자가 모양으로 장식한 후 흰 벽 가운데에 또 하나의 나무 십자가를 설치해 놓았다


1959년 무극본당 쌍봉공소로 새 출발

강거리공소는 1957년 무극본당 설립과 함께 본당에 편입됐다. 무극본당 초대 주임으로 부임한 메리놀외방전교회 오 라이문도(R.T. Obarowski) 신부는 1959년 쌍봉공소를 설립하고, 오늘날 공소 땅에 경당을 지어 축성했다. 1974년 공소에 종을 설치하고, 1995년 공소 사택을 지어 봉헌했다. 지금의 공소 건물은 2008년 개축해 그해 4월 20일 축복했다.

쌍봉공소는 일자형 단층 패널 건물이다. 지붕 위에 아담한 종탑을 설치하고 그 위에 십자가를 세웠다. 공소 안팎은 온통 하얗다. 공소 내부 회중석과 바닥은 원목으로 마감했고, 넓은 창을 내 자연 채광을 통해 따뜻하고 밝은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단을 올려 제단과 회중석을 구분했고, 회색 매트를 깐 제단 위에 나무 제대를 설치해 놓았다. 제대 뒷벽은 십자가 모양으로 장식한 후 흰 벽 가운데에 또 하나의 나무 십자가를 설치해 놓았다. 공소 마당에는 느티나무 두 그루와 의자가 놓여있다. 소박한 성모 동산을 꾸며놓았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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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3-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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