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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적인 농촌 ''버들개마을''에 세워진 공소

[공소(公所)] 38. 청주교구 맹동본당 유포리공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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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교구 맹동본당 유포리공소는 충청북도 감목대리구 막바지 시기에 설립된 무극본당 관할 공소로 신설돼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유포리공소 전경.

청주교구 맹동본당 유포리공소는 충북 음성군 금왕읍 유포소탄길1에 자리하고 있다.

유포리공소 소개에 앞서 한국 천주교 근ㆍ현대사에 있어 널리 알려지지 않은 ‘충청북도 감목대리구’ 시기를 간략하게 설명하려 한다. 이 시기 청주교구의 권역별 중심 본당과 여러 공소가 신설돼 청주교구 설립의 기반을 다진 중요한 때였기 때문이다. 충청북도 감목대리구 시기는 1953년 9월 16일부터 1958년 6월 23일 이전까지로 4년 9개월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 시기 메리놀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의 헌신적인 활동으로 충청북도 교회는 이전에 볼 수 없던 큰 결실을 얻을 수 있었다. 그중 가장 눈에 띈 결실은 ‘선교사의 증가’와 ‘본당 신설’이다. 또 평신도 사도직 단체 도입과 사회복지 및 의료사업 전개도 중요한 사목 성과로 평가되고 있다.

1953년 8월 충청북도 감목대리구 설정

충청북도 감목대리구 설정 당시 충북 지역 교세는 장호원ㆍ옥천ㆍ청주ㆍ제천ㆍ충주 5개 본당에 교우 수 8000명이었다. 충청북도 감목대리구는 당시 관할권자인 서울대목구장 노기남 주교에 의해 1953년 8월 8일(?)에 설정됐다. “서울 노 주교께서는 충청북도의 가톨릭 발전을 위하여 그 지방을 감목대리구로 설정하시는 동시에 미국 메리놀외방전교회 신부들을 초청하셨으므로 동 회의 신부들은 점차로 그 지방에 전교를 시작하리라는 바, 감목대리는 아직 임명되지 않았으므로 당분간 안 몬시뇰께서 감목대리직을 겸임하시게 되었다.”(경향잡지 제45권, 1953년 9월호) 임시 충청북도 감목대리로 임명된 안 제오르지오 몬시뇰은 당시 평양대목구장 서리로 재일본 교황사절의 개인 대리와 가톨릭 구제회의 한국 지부장을 맡고 있었다.

이처럼 충청북도 감목대리구 설정은 1953년 8월 8일(?)로 결정됐지만, 이러한 결정은 임시 조치에 불과했다. 왜냐하면 안 몬시뇰은 임시 감목대리에 지나지 않았고, 메리놀회 본부에서도 그를 정식 감목대리로 임명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에 메리놀외방전교회 본부에서는 감목대리로 임명할 선교사를 협의해 파지 야고보 신부를 선임했다. 그리고 파지 야고보 신부가 노기남 주교로부터 1953년 9월 16일에 충청북도 감목대리로 임명되면서 충청북도 감목대리구는 정식 출범하게 됐다.

충청북도 감목대리구는 서울대목구에서 황해도 감목대리구에 이어 두 번째로 설정된 감목대리구였다. 아울러 대구대목구의 전라도 감목대리구와 전라북도ㆍ전라남도 감목대리구를 포함한다면 한국 천주교회에서 다섯 번째로 설정된 감목대리구였다. 감목대리구 설정으로 충청북도 지역 교회는 서울대목구에서 분리돼 새로운 대목구로 설정될 수 있는 준비 기간을 갖게 됐다. 다시 말해 1911년에 설정된 대구대목구나 1948년에 설정된 대전지목구와는 달리 충분한 사목 역량과 제반 기능을 갖춘 뒤에 대목구 승격을 준비할 수 있게 됐다. 아울러 충청북도 감목대리구 사목을 메리놀외방전교회가 전담하게 됨으로써 충청북도 지역에서 사목하던 한국인 사제들은 차례로 서울대목구로 귀환하고, 그 자리를 메리놀회 선교사들이 대신하면서 이들이 충청북도 교회사의 주역으로 등장하게 됐다.

메리놀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이 사목 전담

금왕읍 유포리(柳浦里)는 앞 내에 버드나무가 많아 지어진 이름이다. 우리말로는 ‘버들개 마을’로 불렸다. 조선 시대에는 충주군 금목면 지역이었으나 1906년 음성군에 편입됐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포동리ㆍ포서리ㆍ포중리ㆍ별선리 일부와 소탄면 한삼리를 병합해 유포리라 하고 금왕면에 편입됐다. 1973년 금왕면이 금왕읍으로 승격됐다. 금왕읍 남서부에 자리한 유포리는 전형적인 농촌으로 최근에는 친환경 유기농법으로 재배된 쌀이 품질을 인정받아 전국에 알려졌다.

1957년 9월 금왕읍에 무극본당(무기라고도 함, 현 금왕본당)이 설립된다. 당시 제2대 충청북도 감목대리 조셉 코너스(Joseph W Connors, 한국명 권약슬) 신부가 장호원본당(현 감곡본당) 분할을 계획하고 새 본당 후보지를 물색했다. 코너스 신부는 당시 서울교구장 노기남 주교가 경기도 지역의 장호원에 새 본당 설립 계획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후보지 중 경기도 장호원 지역은 제외했다. 그리고 선정한 새 본당 후보지는 현 음성군 금왕읍 무극리였다. 무극리가 선정된 이유는 기존의 장호원과 음성본당 중간 지점에 자리하고 있고, 무기공소를 비롯해 먹방이ㆍ배야티ㆍ봉암 등 오래된 공소들이 가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1959년 무극(무기)본당 관할 공소로 설립

코너스 신부는 새 본당 후보지가 정해지자 곧바로 무극리에 성당 대지를 매입하고, 1957년 9월에 ‘모든 성인의 모후’를 수호성인으로 한 ‘무기(무극)본당’을 설립했다. 초대 본당 주임으로 부임한 메리놀외방전교회 오 라이문도(R.T. Obarowski) 신부는 비어 있는 가정집을 수리해 1959년 유포리공소를 설립했다. 1970년 5월에 지금의 공소 건물을 지어 봉헌했다.

이후 유포리공소는 2010년 8월 17일 신설된 맹동본당 관할로 이전됐다. 청주교구는 이날 교구 역사상 처음으로 맹동ㆍ엄정ㆍ삼승ㆍ서청주ㆍ만수 5개 본당을 동시에 설립했다. 맹동본당은 음성 지구의 금왕과 대소본당을 모본당으로 설립과 동시에 예수의 꽃동네 형제회에 사목을 위탁했다. 유포리공소는 2012년 지금의 모습으로 개축됐다.
2012년에 개축한 유포리공소는 강당식 벽돌조 건물로 깔끔하게 단장돼 있다. 유포리 공소 제단.
 
유포리공소는 전형적인 농촌 공소로 젊은이보다 어르신이 많다. 제단 벽에 장식돼 있는 성모자상과 성가정상.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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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3-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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