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7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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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위대한 증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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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종합】 프란치스코 교황이 폴란드 출신의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탄생 100주년을 맞아 출간된 책 서문에서 자신은 사제 생활 내내 성인을 존경했다고 말했다.

교황은 최근 이탈리아어로 출간된 「성 요한 바오로 2세의 100년: 말씀과 사진」(St. John Paul II: 100 Years. Words and images) 서문에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신앙의 위대한 증거자였으며, 사제나 주교로서 그를 존경했다”고 말했다.

이 책은 1920년 5월 18일 태어난 카롤 보이티와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바티칸출판사가 발행했다.

5쪽으로 된 서문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시대에 완벽히 동화돼 항상 하느님과 만나 기도하는 사람이자 격변의 시대에 교회의 수호자였다”고 말하고, “그는 위대한 자비의 증거자였다”고 덧붙였다.

카롤 보이티와 추기경이 1978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됐을 때 현 교황인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료 신부(당시 41세)는 예수회 아르헨티나 관구장이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1992년 베르골료 신부를 부에노스아이레스대교구 보좌주교, 1998년 부에노스아이레스대교구장에 임명하고, 2001년에는 추기경에 서임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4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을 시성했다.

그는 현재의 어린이와 젊은이들은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을 알지 못하거나 희미하게 기억할 뿐이라면서, “그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하느님이 교회와 인류에게 선사한 이 신앙의 위대한 증거자를 기억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많은 사람이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었는지 잘 알지 못한다면서, 그는 21세의 나이에 어머니, 아버지, 형제의 죽음을 겪은 뒤 제2차 세계대전을 맞았으며, “1981년에는 테러 공격을 당해 교회를 위해 피를 흘렸다”고 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는 전적으로 하느님에게 의지하면서 겪은 이런 고통을 통해 성장했으며 그리스도교 신앙이 더욱 굳세졌다”고 덧붙였다.

올해 초 프란치스코 교황은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삶을 성찰한 책 「성 요한 바오로」(St. John Paul the Great)를 공동저술했다. 이 책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게서 기쁨과 자비의 중요성을 배웠다고 술회했다.

한편 폴란드교회는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부모인 카롤 보이티와와 에밀리아 보이티와의 시복시성 작업을 본격화했다. 크라쿠프대교구는 5월 7일 카롤과 에밀리아 보이티와의 시복을 위한 예비심사를 시작했다. 크라쿠프대교구는 법정 구성과 더불어 이들의 성덕을 증명할 증거를 수집할 예정이다.

군인이었던 카롤 보이티아와 교사였던 에밀리아 보이티와는 1906년 결혼해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을 포함해 2남 1녀를 낳았다. 어머니 에밀리아는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8살이던 1929년 선 생일을 앞두고 심근염과 신장부전증으로 선종했고, 아버지 카롤은 나치 독일이 폴란드를 점령하고 있던 1941년 선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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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0-05-12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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