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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칼럼] ‘서방 총대주교’에 대한 신중한 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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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판 「교황청 연감」(Annuario Pontificio)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황 호칭인 ‘서방 총대주교’(Patriarch of the West)를 다시 사용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2006년에 이 호칭의 사용을 중지시켰다. 이 호칭이 갖는 의미에도 불구하고 교황청은 이 호칭의 재사용과 관련해 공식적인 발표나 설명은커녕, 어떤 식으로도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다만 지난 4월 9일 발간된 「교황청 연감」에서 로마교구의 교구장 주교, 그리스도의 대리자, 사도들의 으뜸 후계자, 이탈리아 교회의 수석 주교 등 교황 호칭들 가운데 재등장했을 뿐이다.

 

일반적으로, 자유주의자와 개혁가들, 교회일치 활동가들은 권력과 특권을 강조하는 교황 호칭을 탐탁지 않아 하는 반면 보수적인 전통주의자들은 이를 선호한다. 그런데,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서방 총대주교’를 사용 중지시켰을 때, 교회일치 진영은 그 결정이 동방교회를 비롯한 (서방 교회 외의) 나머지 그리스도교 세계에 대해서도 로마 교황의 통치권을 주장하는 것으로 간주했다.

 

 

당시 교황청 그리스도인일치촉진평의회(현 그리스도인일치촉진부)는 ‘서방 총대주교’라는 호칭이 642년 처음 등장했지만, ‘서방’은 지리적 의미가 아니라 북아메리카에서 뉴질랜드에 이르는 지역의 문화적 맥락을 의미하기 때문에 이 호칭은 이제 무의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이 호칭을 포기하는 것은 동방총대교구에 대한 가톨릭교회의 입장 변화가 아니라 단순히 “역사적이고 신학적인 ‘현실화’”라고 말했다.

 

 

‘서방 총대주교’라는 호칭이 회복됨에 따라 프란치스코 교황에 호의적인 이들은 이번 결정을 교회일치라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즉 로마 교황은 라틴교회의 통치에 있어서 법적, 행정적 책임을 지고 있는 반면, 동방교회에 있어서는 교황의 수위권이 법적 권한을 행사하는 것보다는 일치에 봉사함을 인정하는 결정이라고 평가한다.

 

 

교황청의 ‘피데스’ 통신은 4월 11일자 뉴스에서 ‘서방 총대주교’의 회복이 프란치스코 교황의 시노드 교회의 전망을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동시에 동방교회의 전통적 개념인 5개 총대주교 관구(Pentarchy), 즉 콘스탄티노플, 알렉산드리아, 안티오키아, 예루살렘, 그리고 로마의 5개 총대주교좌로 구성되는 교회 지도 체제를 인정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교회일치 진영 중 일부 사람들은 이번 결정이 내년 니케아공의회 1700주년 거행의 맥락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내년 주님 부활 대축일에 바르톨로메오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를 고대 니케아였던 터키 이즈니크에서 다른 많은 그리스도교 지도자들과 함께 만날 예정이다. 가톨릭교회의 희년이기도 한 내년에는 동서방 교회가 교회 전례력으로 같은 날 주님 부활 대축일을 맞는다. 교회일치운동 지도자들은 이날을 아예 영구적으로 공동의 부활 대축일로 못박기를 원하고 있다.

 

 

이탈리아의 수도승인 엔조 비안키는 이탈리아 일간지 ‘라 레푸블리카’에 기고한 글에서 ‘서방 총대주교’ 호칭을 회복시킨 프란치스코 교황의 결정을 환영했다. 그는 “야단스럽지 않지만 중요한 이번 결정은 무엇이 비가톨릭 형제들에게 상처를 주는지, 또는 기쁨을 선사하는지에 대한 가톨릭교회의 관심을 보여준다”며 “교회들이 참된 자매들로서 서로 논의하고 이해하며 함께 걸어갈 때에만 우리는 인류 전체의 일치에 기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서 이번 결정은 깊은 교회론적 의미를 담고 있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 것인 동시에 내년에 기대되는 만남의 준비다. 그런데 이처럼 중대한 의미를 지닌 결정이 왜 그렇게 한밤의 도둑처럼 이뤄져야 했는가?

 

 

2006년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이 호칭의 사용을 중지했을 때에도 큰 소란은 없었다. 교회일치 진영의 불평이 있기 전까지 교황청은 이와 관련해 아무런 말도 없었다. 사실 「교황청 연감」의 내용 중에서 어떤 수정이나 개정이 있을 때에도 이와 관련해 공식적인 언급을 하지 않는 것이 교황청의 관례다.

 

 

하지만 이번에는 분명히 우리가 관심을 가질 만한 다른 이유가 있다. 교황청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결정을 뒤집었다는 또 다른 사례에 부적절한 관심이 주어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이미 그런 일을 겪었고 그럴 경우 생겨나는 악의와 속앓이, 적개심을 잘 알고 있다. 사안이 세간의 이목을 끄는 유명한 쟁점일 경우에는 더 그러하다. 더군다나 지금은 미묘한 시점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최측근이었던 게오르그 겐스바인 대주교와의 관계 회복을 위해서 그를 발트 3국 교황 사절로 임명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교황청은 이번 결정이 두 교황 간의 또 다른 갈등으로 여겨지지 않기를 바란다. 만약 그렇다면, 교황청의 신중함은 단지 교황청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거나 사실을 부인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매우 용기 있는 행동이다.

 

 

 

글 _ 존 알렌 주니어
교황청과 가톨릭교회 소식을 전하는 크럭스(Crux) 편집장이다. 교황청과 교회에 관한 베테랑 기자로, 그동안 9권의 책을 냈다. NCR의 바티칸 특파원으로 16년 동안 활동했으며 보스턴글로브와 뉴욕 타임스, CNN, NPR, 더 태블릿 등에 기사를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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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4-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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