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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훈 주교에게 듣는 신앙과 경제](100) 산악장비 협동조합 ‘MEC’

사랑·연대·협동의 실천 본보기/ 1970년대 등산장비전문점 없던 캐나다 상황서/ 밴쿠버 UBC 대학 짐 바이어스 설립 제안/ 조합원 300만 명 넘는 연대의 공동체로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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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히 자신의 것이 아님에도 어떠한 대상에 사랑을 느끼고 나아가 자긍심까지 품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도 모르겠습니다. 특히나 수많은 이념과 이데올로기의 홍수 속에서 피부에 와닿는 참 사랑을 나누고 체험하기 힘들었던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딴 세상 이야기로 들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유럽 사회만큼이나 그리스도교 문화가 깊숙이 배인 캐나다에서는 협동조합이 그러한 매력을 지닌 존재로 자리 잡아오고 있습니다. `산악장비 협동조합(Mountain Equipment Co-op, 이하 MEC)`도 캐나다 국민들의 자부심이 살아 숨 쉬는 곳 가운데 하나입니다.

“데이비드 윈게이트, 롤랜드 버튼, 짐 바이어스, 랍 브루스, 사라 올리버, 사라 골링, 최초 조합원 여섯 분의 비전과 헌신, 그리고 정의로움에 감사드립니다. 이분들은 40년이 지난 지금까지 변함없는 조합원이고, 우리 사업에서 어떤 사사로운 이익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첫 출자 지분 5달러는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서로 소송을 걸어 다툰 적도 없습니다. 언제나 한결같이 연례 프레젠테이션에 참석해, 집에서 싸온 음식을 나눠 먹습니다.”

MEC 홈페이지의 회사 소개 마지막 부분을 장식하고 있는 글입니다. 이 짧은 글 속에 6명의 설립자에 대한 수백만 조합원의 사랑과 존경의 마음이 밀도 짙게 담겨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MEC의 시작은 아직 등산이 대중화되지 않은 1970년 무렵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서부 브리티시컬럼비아 주의 밴쿠버는 로키산맥 줄기로 등산인구가 많은 곳입니다. MEC가 태동하던 1970년대 초만 해도 캐나다에는 제대로 된 등산장비전문점이 없어서 간단한 장비 하나를 사려고 해도 미국 시애틀에 있는 매장을 찾아 국경을 넘어야 했습니다. 문제는 캐나다로 돌아올 때였습니다. 새로 구입한 등산장비들에 대해 관세를 내야 하는데, 캐나다 등반인들은 꾀를 내 미국 쪽에서 며칠 간 등산을 하면서 새 장비에 일부러 흠집을 내고는 헌 장비라 우기며 국경을 넘곤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관행이 만연하자 미국 경찰도 `탈세등반`을 단속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와중에 1970년 여름 밴쿠버 UBC 대학 산악부의 짐 바이어스가 동료들에게 협동조합을 제안하고 나섭니다. 바이어스의 열정에 의기투합한 산악부 회원 6명은 마침내 1971년 8월, 1인당 출자금 5달러씩을 모아 협동조합을 설립하기에 이릅니다. 첫 사무실은 UBC 대학의 학생회관 구석방을 임대해 마련했습니다.

수익은 조금만 남겨 싸게 팔고 민주적으로 운영한다는 원칙을 세웠습니다. 애당초 돈을 벌려고 시작한 일이 아니라, 협동으로 산악인들에게 편의를 제공하자는 목적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초기에는 자금이 부족해 사업이 여의치 않았습니다. 정찰 가격보다 싸게 팔다보니, 일부 업체는 아예 물품 공급을 끊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함께 힘을 모으면 어떤 난관도 극복할 수 있다는 협동조합에 대한 믿음과 열정이 모든 역경을 이겨내게 했습니다. 협동조합의 취지를 이해하게 된 이들이 하나둘 조합원으로 동참하면서 1980년에 들어서는 조합원 수가 5만 명을 넘어서기에 이릅니다. 조합에 대한 신뢰와 사랑이 지속적으로 쌓여 2009년에는 급기야 조합원 300만 명을 넘기게 됩니다.

아름다운 마음을 지닌 이들이 키워온 아름다운 공동체 MEC는 이렇게 캐나다인들의 자부심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일상 속 가까이에서 사랑, 연대, 협동의 아름다운 향기를 느낄 수 있는 존재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해봅니다. 바로 이것이 하느님 사랑을 세상과 사회 안에서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용훈 주교 (수원교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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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3-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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